기름생산소조의 김성욱 조장이 끼어 들었다. 그러자 간장생산소조 이순오 조장이 코웃음쳤다.

 『배급도 제 날짜에 주지 못하구 열흘씩 스무날씩 늦추고 있는데 장마당마저 없애버리면 인민들 호구는 누가 감당하네? 기거라도 있으니까니 농촌과 도시가 서루 물물교환이라두 하면서 호구를 이어가는데….』

 답답한 듯 된장생산소조의 왕수련 아주머니가 다시 물었다.

 『식량 사정이 이케 긴장되고 있는데 당 일꾼들은 대관절 뭐하구 있습네까? 이럴 때 인민들이 강냉이죽이라두 먹구 살 수 있게 무슨 대책이라도 내어놓아야지?』

 석정달 아바이가 담배를 한 대 붙여 물며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요사이는 농촌에도 식량이 기근이라는데 당에선들 무슨 뾰족한 대책이 있갔어?』

 『길타면 외국에 나가서 수입이라도 해 와야디요? 끼니를 못 잇고 있는 인민들이 줄을 서 있는데 기거이 말이 됩네까?』

 석정달 아바이는 이러다가 사무실이 당 일꾼들 성토장이 되겠다 싶었든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각 생산소조 조장들의 이야기를 중간에서 가로막았다.

 『자, 자, 이자 기런 이야기는 그만 하구서리 모두들 소조로 들어가 맡은 일을 해봅세다. 기카구, 성복순 동무는 두부비지 기거이 인심쓰듯 함부로 퍼주지 말라우. 식량사정이 긴장되니까니 기거마저 관리 잘하라고 위에서는 난리야.』

 『끼니거리가 없어 아침도 못 먹구 나오는 로친네들한테 두부 비지도 못 먹게 하면 어캅네까? 가내작업반에 나오시는 로친네들은 연로보장급 받고 집에서 편히 쉬셔도 될 연세인데도 가내작업반에 나와 열심히 일하는 것은 순전히 먹구 살자구 기러는건데…?』

 『그 사람들도 배고프니까 좀 같이 나눠먹자고 하는 소리갔디, 뭐 딴 뜻이야 있간?』

 성복순은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이라면 새겨 듣겠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석정달 아바이가 원자재 출고지도서를 떼어주었다. 성복순은 그걸 손수첩 속에 챙겨 넣고 다른 소조 조장들과 함께 사무실을 나왔다. 몰아치는 눈바람이 코끝을 도려낼 것 같았다. 그녀는 개털 목도리를 다시 여미며 고개를 숙여 원자재 창고 쪽으로 바삐 걸었다.

 문득 출근길에서 만났던 김유동 부비서의 얼굴이 떠올랐다. 밤을 꼴딱 새웠는지, 다른 날보다 유난히 얼굴이 꺼벙해 보이던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내가 만약 유동 오빠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재생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왠지 모르게 오빠에게 잘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40이 넘었는데도 자기 핏줄을 이을 자식도 없고, 고아원에서 입양한 자식은 꽃제비가 되어 거리를 헤매느라 어머니가 아파 다 죽어가도 집에 한번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을 생각하니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배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