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교수
잊을 만하면 다시 일어나니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몰라, 그저 목숨을 운에 맡기고 살아야 하는 것 같다. 개인의 힘으로는 달리 대비할 방법도 없으니 자포자기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이다. 배에 타자니 언제 뒤집힐지 알 수가 없고, 대교를 건너자니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겠고, 환풍구 덮개에 올라 걷자니 언제 밑으로 떨어질지 알 수가 없으니, 한국에서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걱정을 하며 살아야할 판국이다.
최근에 일본의 지방 도시를 다녀왔다. 한국의 환풍구 덮개가 무너져 많은 사람이 희생된 터라, 건물주변에 만들어져 있는 환풍구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사고를 보고 조처한 것은 아닐 텐데 너무나도 주의를 기울인 구조물과 안전표시에 새삼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넓은 환풍구 구조물 제일 위에는 튼튼히 고정된 그물망이 쳐져 있고, 덮개인 철제 구조물은 그 그물망 한참 아래에 놓여 있어 원천적으로 사람들이 올라가 서 있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물과 덮개의 안전성에도 부실이 없어 보였으며, 환풍구 구조물 벽에도 사방에 위험함을 알리는 경고표시가 붙어 있어, 그 위에서 안전사고가 나리라는 상상은 불가능한 구조였다. 안전조치가 되어있지 않아 안전요원의 배치를 운운해야만 하는 한국의 상황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면 아주 당연하고 평범한 조치인데, 한류를 자랑하며 세계최고라 우쭐해하는 한국에는 어째서 이런 당연한 것들이 빠져 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우리는 모든 시설이 사고가 난 후에야 겨우 공사와 감리가 부실했다느니, 관의 관리가 소홀했다느니, 책임이 누구에 있냐느니 하는 타령을 하며, 끔찍한 희생이 나왔음에도 사고에 대한 조사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식이다. 뉴스에서도 그런 부실한 시설물들을 전부 조사하여 철저하게 조처할 것 같은 분위기를 전하지만, 그 역시 그저 순간의 분위기로 끝나기 일쑤이다.

한국의 기술이 세계적이라며 자랑스럽게 외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런 주장과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최고의 IT강국으로 우뚝 서 있고, 많은 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한류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상황이니, 한국사회의 모습을 높은 수준의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일상을 편히 마음 놓고 생활하고 있지만, 일련의 사건사고들은 그것이 얼마나 허구이며 착각인지를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고들은 우리의 모습을 세계최고는커녕 흉내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정보강국인 한국에 세계의 정상적인 정보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몇 백 번이고 되풀이하지만, 한국이란 너무나도 피드백이 안 되는 나라인 듯하다.
국민들은 사고를 쉽게 잊고, 또한 사고가 남의 일이지 나의 일이 아니라 생각하며 무심코 생활하다 또 다른 사고에 휘말려 피해를 보게 된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이번에야 말로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를 뜯어고치겠다며 내놓는 국가의 서슬 퍼런 대책은 그 상황을 모면하려는 임기응변의 입발림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우리 국민들은 반복되는 인재의 피해에서 벗어나기 어렵기만한 상황이다. 관이나 기업이 조금만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가지고 본분에 충실이 임한다면 적어도 인재라는 단어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악습과 부조리가 오랜 관행이라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는 앞으로도 많은 인재의 위험에 노출되어 불의에 사고에 희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쁜 관행은 그냥 없애면 되는 것이다. 지도자의 의지만 있다면 없애지 못할 나쁜 관행은 없는 것이다. 국민들은 모든 사고가 바로 나에게 닥쳐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안전 불감증 타파에 감시의 눈을 더욱 강화해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