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부끄러운 자화상 1회용·군면제 대표팀
▲ 지난 9월28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야구 결승전 한국과 대만의 경기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야구대표팀은 대회 전부터 '군 면제를 위한 대표팀'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인천일보 자료실
▲ 지난 4일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공수도 쿠미테(대련) 남자 84㎏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 장민수(왼쪽)와 베트남 은구옌 민풍이 대결을 펼치고 있다. 장민수는 이 경기에서 승리해 동메달을 수확했다. /연합뉴스
야구선수 부상 숨기고 출전강행 논란

"오직 軍 문제 해방 목표" 비난 더 악화

"국위선양 선수 혜택제도 찬반 엇갈려

공수도 대표 생계 곤란 일용직 전전

비치발리볼 등 대회 이후 뛸 팀 없어

훈련시설 부족해 이곳저곳 찬밥신세



지난 9월28일. 인천문학경기장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남자축구에서 일본을 1대 0으로 꺾은 것도 모자라 야구는 대만을 상대로 6대 3으로 승리했던 날이다.

엎치락뒤치락 승부 속에서 한국은 8회에서만 4점을 뽑아내며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군 면제를 위한 대표팀'이라는 이야기도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이번 야구 대표팀에 선발된 24명의 선수 중 병역 미필자는 13명에 달한다.

투수에는 이재학(NC), 이태양(한화), 홍성무(동의대), 차우찬(삼성), 한현희(넥센), 유원상(LG), 등이 속하고, 야수로는 나지완(기아), 김민성(넥센), 오재원(두산), 황재균(롯데), 김상수(삼성), 나성범(NC), 손아섭(롯데), 등이 군 면제 혜택을 받게 됐다.

'금메달=병역면제'라는 승리를 향한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대만 등 야구 강국은 모두 선수구성이 엉성해 이들을 상대로 우승이 과연 '국위선양'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금메달보다 군면제가 진짜 목표?

이런 상황 속에서 '군 면제 위한 대표팀이 아닌가' 하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사람이 많다.

논란의 중심에는 나지완이 있다.

나지완은 이른바 '군 면제 위한 대표팀'에 대표적인 선수로 대중의 지목을 받고 있다.

정규시즌에서 3할1푼5리의 타율에 79타점을 기록하고 있는 나지완이지만 이번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3경기 교체 출전해 3타수 무안타로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후 인터뷰가 국민들의 가슴속에 불을 질렀다.

나지완은 당시 인터뷰에서 팔꿈치 부상에 대해 언급하며 "스프링캠프부터 참고 뛰었지만 한계가 온 것 같다"며 "오른쪽 팔꿈치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부상을 숨긴 채 대표팀에 승선, '군 면제 위한 대표팀'을 자인하는 꼴이 된 것이다.

다른 경우지만 28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건 축구 대표팀에도 군 면제와 관련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손흥민(레버쿠젠)이 소속팀 일정 문제로 대표팀에 오르지 못한 것이 문제 시 됐다.

'이광종호'에 오른 선수들은 모두 군면제 혜택을 받게 됐다.

하지만 정작 국민적 뜨거운 관심을 받는 손흥민은 군 입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일본의 경우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해 와일드카드를 한 명도 섞지 않았다.

선수구성도 21세 이하 선수들로 구성, 이른바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일본의 경우 군 입대가 국민의 의무가 아니라 우리나라와 상황이 다른 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체육대회의 최종 목표가 군 면제인 것은 좋은 방향이라고 볼 수 없다.



▲1회용 국가대표선수들의 설움

'군 면제 위한 대표팀'과 함께 화두로 떠오른 것이 '1회용 국가대표'다. 일부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얘기다.

메달을 따내며 국위선양했지만 프로 선수들의 그늘에 항상 가려져 있는 선수들이 많다.

국가대표 대접은커녕 열악한 훈련 시설은 물론, 심지어 당장의 생계 걱정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공수도 선수들은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닌 관계로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지도 못한다.

경기장 하나를 깔 수도 없는 좁은 체육관을 빌려 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공수도의 기대주 김도원(울산진무)은 지난 광저우 대회에 이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경기 종료 후 "대표팀 훈련수당은 나오지만 그것만으로는 힘들다. 훈련이 없을 때 단기로 할 수 있는 일을 구하곤 한다"면서 "나도 인형탈 알바나 무대 설치 등 여러 일을 했었다"고 털어 놓은 바 있다.

비치발리볼 국가대표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팀이 아시아경기대회 8강전에서 최강 중국팀에 패한 다음날 선수들은 흩어졌다.

비치발리볼 선수들에게 패배는 곧 팀 해체와 같은 의미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은 커녕 다른 국제대회 출전은 기약 없는 미래일 뿐이다.

지난 9월26일 인천 남동체육관. 우리나라 최초의 남자 트램펄린 국가대표인 한 고교생은 처음 출전한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서 8위를 기록했다.

결선에 참가한 선수가 8명이었으니 다른 말로 꼴찌를 했다.

하지만 앞서 열린 예선에서 그는 2명을 제쳤다.

이마저도 기적에 가깝다. 왜냐하면 트램펄린 국가대표팀이 꾸려진 것은 지난 2월이었고 경비가 없어 7월에야 훈련을 시작했다.

훈련장도 없어 문경의 국군체육부대에서 눈칫밥을 먹었다.

모든 경비는 자체부담이었다. 종목 규칙을 몰라 외국서적을 읽으며 하나하나 배워야했다.

이 트램펄린 국가대표 역시 경기가 끝나자 바로 짐을 싸야했다.

비치발리볼이나 트램펄린 모두 실제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기간은 2개월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대표적 '1회용 국가대표'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인천 대회에 첫 출전한 크리켓 대표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번 대회에 출전했지만 팀의 존속여부는 미지수다.

9개월간의 짧은 훈련기간. 그동안에도 대표팀은 연습할 곳이 없어 자리가 나는 훈련장으로 급하게 출발했고, 식사도 불규칙할 수밖에 없었다.

실업팀도 없어 선수도 없을 수밖에 없다.

바쁜 훈련일정에 모든 선수들은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크리켓 남자대표팀은 지난 9월29일 중국을 상대로 당당히 1승을 신고했다.

여타 인기 스포츠의 금메달과 맞먹을 정도로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대중의 관심을 싸늘했다.

대회가 끝나고 크리켓 대표팀은 언제 다시 모인다는 언질도 없이 6개월짜리 국가대표 생활을 끝마쳤다.

이미 해체된 '급조'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바라는 것은 딱 하나다.

계속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만 조성해 달라는 것이다.

크리켓 여자 국가대표팀 주장 오인영은 "크리켓 경기장이 하나뿐인데 없어질 수도 있다는 얘길 들었다"며 "당분간 수술과 재활에 들어가는 선수가 많아 다들 모두 몸을 추스르기 바쁘겠지만, 앞으로도 동료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간절한 소망을 전했다.

수년간 온몸이 성할 날이 없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선수들이다.

모든 선수들의 노력에는 '최선'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군 면제'로 얼룩진 인기 스포츠에 가려 '1회용 국가대표'들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는 현실이다.

아무리 비인기 종목이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대표 선수를 관리해야한다.

프로 선수 생활에서 2년의 공백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길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국위선양'한 선수들에게 좀 더 운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제도에 대해 이견의 여지는 없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 역시 한 치의 거짓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군 면제 위한 국가대표'나 '1회용 국가대표' 모두 국제대회에 어울리는 모습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좀 치사한 군 면제 방식 개선'과 '비인기 종목 국가대표에 대한 장기적 육성' 이 두 가지를 해결한다면 한국 체육이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종만·김근영기자 kky8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