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8> 계양팔경·부평팔경·서곶팔경
계양과 부평은 각각 도호부가 설치된 바 있고 서곶(西串·石串面과 毛月串面의 통합)은 부평에 소속돼 있었다. 인접 지역이면서 팔경이 각각 선정된 것은 해당 지역의 특성이 유사하면서 동시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1> 계양팔경
虛庵冷井 허암산의 찬우물
雷岩宿雲 뇌암에 머물고 있는 구름
蘭浦靈葉 난포의 난지초
桂山懸瀑 계산천의 폭포
尾島落照 꼬리섬의 낙조
鷹峰朝輝 매봉고개의 아침 햇살
琢玉成文 탁옥봉 주변의 글 읽는 소리
天馬呈瑞 천마산의 상서로움

虛庵冷井은 허암이 차(茶)를 다려 마셨다는 찬우물이다. '허암산'은 검암동 소재의 산으로, 조선조 연산군 때 허암(虛庵) 정희량(鄭希良·1469~?)이 은둔한 곳이다. 그가 허암산에 머물 때, '해는 저물어 강위에 푸른데/날씨 차니 물결도 스스로 일더라/외로운 배는 일찍이 매어 놓았는데/풍랑은 밤을 타서 더욱 많이 일더라(日暮滄江山/天寒水自波/孤舟宜早泊/風浪初應多)'하며 자신의 처지를 읊은 바 있다.

蘭浦靈葉에서 '난포'는 북인천 IC와 검암동 사이에 있던 난지도 포구로 난지초의 자생지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桂山懸瀑은 경명고개를 발원지로 하여 온수동을 가로질러 굴포천으로 흘러가는 개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尾島落照는 꼬리섬의 낙조인데 여기서 꼬리섬은 정자도를 가리킨다. 鷹峰은 '매봉재'로 연희진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의 끝에 있는 고개이다.

琢玉成文에서 '탁옥'은 산의 형태가 청아하고 수려해 옥을 쪼아 낸듯한 '탁옥봉'을 가리킨다. 흔히 봉우리 이름과 '성문(成文, 문장을 이룸)'이 연계된 게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아 '탁옥봉 도사의 글공부'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탁옥'의 자의(字意)가 '시구를 다듬다'와 '공부하다'와 관련돼 있기에, 탁옥봉 근처에 특정한 교육 공간이나 그것과 관련된 풍경을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天馬呈瑞은 전거에 따라 天馬皇瑞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천마산이 아기장수 설화와 관련돼 있어 '皇'이 '상서로움을 보이다(呈瑞)'에 포괄되기에 전자로 이해해도 무방할 듯하다.

<2> 부평팔경
桂陽孤鐘 계양산 중심성의 종소리
蘭浦歸帆 난포로 돌아오는 배
大橋漁火 한다리의 고기잡이 불
景明落照 경명고개의 낙조
溫洞瀑布 온수동의 폭포
古城牧笛 옛 산성의 목동 피리소리
遠積暮雨 원적산의 저녁 비
西川院沙 서천원의 모래밭

桂陽孤鐘은 '계양산 중심성의 공해루에 걸렸던 종의 소리'이고 大橋漁火는 '한다리의 고기잡이 불'이다. <부평부읍지>에 의하면, 한다리는 부평부 동쪽 10리의 굴포천 상류 직포(直浦)에 있던 무지개(紅霓門) 형태의 다리이다. 다리 모양과 고기잡이 불빛이 결합된 야경을 상상하면 선정한 자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경명고개는 계산동과 공촌동 사이의 징맹이고개이다. 溫洞瀑布의 온수동(溫洞)은 부평향교의 동북쪽에 있는 계산천(桂山川) 주변을 가리킨다. 古城牧笛에서 옛 산성은 계양산성이다. <동국여지승람>에 계양산은 부평의 진산이라고 기록돼 있고, 현재는 계양산 서남쪽 정자가 있는 아래쪽에만 석축의 흔적이 남아 있다.

<3> 서곶팔경
桂陽輪月 계양산의 둥근 달
虎島落照 호도의 낙조
銀波沈月 서해 만조의 바닷물 위에 잠기는 달
蘭浦歸帆 난포로 돌아오는 배
北川細柳 북천에 늘어선 수양버들
西湖垂釣 서호에서의 낚시
虛岩古跡 허암의 옛 자취
黑岩龜形 검암동 거북 바위

桂陽輪月은 '계양산의 둥근달'이다. 산 정상에서 둥근 달(滿月)을 감상하는 경우와 만월이 계양산을 밝게 비추고 있는 경우를 연상할 수 있다. 銀波沈月은 새벽녘 서쪽 바다의 광경이기에 동시에 동쪽의 여명(黎明)을 감상할 수 있다. 감상자는 지는 것과 뜨는 것의 사이에서 양자가 빚어내는 다기한 현상을 번갈아가며 조망할 수 있었다.

北川細柳은 '북천(북쪽 냇가)에 늘어선 수양버들'이고, 西湖垂釣는 '서쪽 호수에서 낚시하는 모습'이고, 黑岩龜形은 '검암동 거북 모습의 바위'이다.

계양팔경, 부평팔경, 서곶팔경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은 난지도의 蘭浦이다. 蘭浦靈葉(계양팔경), 蘭浦歸帆(부평팔경, 서곶팔경)이 그것이다. 落照의 경우는 각각 尾島, 景明, 虎島와 관계돼 있었다. 공동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虛庵冷井(계양팔경)과 虛岩古跡(서곶팔경)처럼 허암 정희량이다.

현재 확인할 수 없는 포구(浦), 물(川, 湖, 瀑), 섬(島)이 계양팔경, 부평팔경, 서곶팔경에 등장하고 있다.

1910년도 인천지형도와 2001년도 지형도를 대비해보면 매립된 섬이 한둘이 아니기에 '물'과 관련된 팔경이 사라진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섬의 형태가 잔존하기도 하지만 아예 사라진 경우가 적지 않은 서구의 경우가 더욱 두드러진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