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일보 연중기획] 1956년 전국체전부터 2014년 AG까지 국조 단군 제사 지내던 마니산서 채화
[인천일보 연중기획] 1956년 전국체전부터 2014년 AG까지 국조 단군 제사 지내던 마니산서 채화
  • 김진국
  • 승인 201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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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의 인천에서 시작한 최초의 역사 성화
▲ 45회 전국체전(인천) 성화점화 모습.
▲ 마니산 참성대
'하늘의 불' 성화(聖火)를 체육 제전에서 처음 밝힌 것은 고대 그리스 때부터라고 한다. 올림피아 제전에 불을 지폈던 제우스 제단의 성화를 본떠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 올림픽대회 때부터 개최지 주경기장의 성화대에 점화했다.

헤라 신전에서 태양으로부터 채화한 횃불을 릴레이로 봉송하는 의식을 행한 것은 1936년 손기정 선수가 세계를 제패했던 베를린 올림픽부터였다. 성화를 올림픽 헌장에 넣어 주요행사로 삼은 것 역시 1952년도 베를린올림픽부터다.

아시아에서의 성화는 1951년 제1회 뉴델리 대회 때 등장했는데, 채화는 개최지의 유서 깊은 명소에서 하는 것이 관례였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성화를 채화하고 릴레이 봉송을 했던 것은 1956년도 제37회 전국체전 때부터였다.

당시 한국올림픽위원회 이상백 회장의 제안에 따라 국조(國祖)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나라의 성지 강화 마니산 정상의 참성단(塹星壇)에서 채화를 했다. 이후 팔선녀로 분장한 소녀들이 매년 건경한 자세로 하늘의 불을 모셨다. 이번 제17회 아시아경기대회의 성화 역시 참성단에서 채화해 아시아 각국을 돌고돌아 서구 주경기장에 안치되었는데, 아시아경기대회 시발지인 뉴델리의 불을 '합화(合火)'한 국제적 불이라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인천은 최초로 '하늘의 불'을 채화해 젊은이의 제전을 밝혀온 성지이자, '땅의 불' 성냥을 국내 최초로 만들어 백성들과 나준 '불의 도시'이다. 어둠을 밝히고, 추위로부터 세상을 따듯하게 감싸주었던 '휴머니즘의 도시'가 인천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불을 잘못 다뤄 구설이 있었다. 성화 최종주자가 한류 스타였다고 설왕설래하더니, 그제는 10여 분간 성화를 꺼뜨렸다고 한다. 단군 할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다면 크게 역정을 내셨을 것 같다. 조신해 '성화'를 밝혀야겠다.

/조우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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