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논설실장
유신의 서슬이 시퍼렇던 1973년 8월31일 오후 11시30분 인하공사(중앙정보부 인천분실) 지하실. 차가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눅눅한 습기와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다. 딸깍 소리와 함께 백열등에 불이 켜졌다. 칠순 노인과 중장년의 사내가 입을 꾹 다문 채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노인은 당시 인천의 대표 신문이었던 '경기매일신문' 송수안 발행인이었고, 중장년의 사내는 김형희 편집국장이었다. 밖에서부터 군화소리가 점점 가깝게 다가오더니 쾅 하고 문이 열리면서 몇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험악한 인상의 군인들이었다.

"빨리 찍어!" 중앙정보부 요원들로 보이는 군복 차림의 사내들이 서류를 디밀었다. '3사 통합에 찬성하며 9월1일부터는 경기매일신문을 발행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였다. 송 발행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으윽…" 노인의 가슴팍으로 군홧발이 와서 꽂혔다. 중장년 사내의 몸에도 군홧발과 주먹이 정신없이 날아들었다.(김형희 국장의 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송 발행인과 김 편집국장은 결국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1945년 인천 최초의 일간지인 '대중일보'로 시작해 1950년 6·25전쟁으로 휴간했다가 '인천신보'로 재편한 뒤, 1960년 경기매일신문으로 이름을 바꾸며 쌓아온 '인천정통언론'의 역사가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1966년 2월22일 창간, 인천에 본사가 있던 '경기일보' 역시 같은 날 지령 2334호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경기매일신문과 경기일보는 수원이 본사인 연합신문에 강제 통폐합된다. 통폐합된 '경기신문'은 '권력의 선택'을 받은 신문이었다. 따라서 인천 뉴스를 중심으로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대중일보, 경기매일신문, 경기일보의 논조와는 전혀 다른 편집 방향을 지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언론자율화가 실시된 1988년까지 15년 간 인천은 입이 있어도 말을 못 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 하는 언론 암흑기의 시간을 지내야만 했다. 많은 기자들이 해직돼 거리로 쫓겨났고 집안이 풍비박산 난 해직 기자들도 넘쳐났다.

우리나라 언론사에서 언론 통폐합은 1973년, 1980년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우선 1970년대엔 지방신문의 '일도일사(一道一社)' 원칙에 따른 통합이 진행됐다. 인천의 경기매일신문과 경기일보가 폐간된 때이다. 이어 1980년 11월12일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수순에 들어간다.
80년 봄 '언론 검열 철폐와 자유언론 실천운동'을 주도한 '기자협회' 간부들을 대량 검거하는 한편, 언론인에 대한 대대적 숙청을 통해 반정부적 언론인 700여명을 사지로 내 몬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에 협조적인 신문들은 당근을 주었으며, 저항하는 언론사와 기자들에겐 가차 없이 채찍을 내리쳤다.
강제 폐간됐던 신문들이 부활한 건 1987년 이후이다. 87년 6월 항쟁에 놀란 군부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와 함께 언론 자율화를 발표했고, 이듬해인 88년 많은 신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언론인들에게 있어서 88년 언론 자율화는 죽었던 가족이 살아난 것과 같은 사건이었다. 80년대 군사정권에 굴복하지 않고 인고의 세월을 보내온 해직 기자들은 잉크가 아닌 피눈물로 창간호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인천에서는 인천신문(현 인천일보)이 창간호를 발간했다. 제호를 바꾸어 창간호를 냈지만, 권력의 폭압으로 신문을 빼앗겼던 것이으므로 사실은 경기매일신문 복간의 성격이 짙었다. 당시 인천 지역사회에서 대중일보나 경기매일신문의 복간호로 내자는 의견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지령보다는 정론직필의 정신과 철학이 중요한 것이라는 판단 아래 1호로 새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 인천은 언론의 종말을 맞았던 8월31일과, 인천의 언론정신이라 할 수 있는 '대중일보'가 창간한 10월7일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지난해부터 인천 연고의 언론사들과 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이 모여 '대중일보'의 정신을 기리자는 다짐을 한 건, 우리 지역 언론의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취지에서였다.
대중일보와 그 후신인 경기매일신문은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갔다. 그렇지만 인천의 언론들은 경기도도, 서울도 아닌 '인천의 언론'이었던 대중일보의 정신만큼은 기리고 계승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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