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정체성 찾기] 이영태의 한시로 읽는 인천 옛모습
7> 덕적팔경
▲ <해동지도>, 덕적도 문갑도 울도
인천팔경에서 팔경의 선정은 있으나 그것을 한시(漢詩)로 그려내지 않은 경우로 덕적팔경, 계양팔경, 부평팔경, 서곶팔경, 용유팔경, 개항기와 일제강점기에 전하던 인천팔경(5개)이 있다.
<덕적도사>(1985)에 "俗云에 덕적팔경이란 것이 있으니" 하면서 제시한 덕적팔경이 있다.

國壽丹楓국수봉의 단풍
龍潭歸帆용담으로 돌아오는 돛단배
雲注望月운주산에서 달구경
黃海落照황해 바다의 낙조
蔚島漁火울도의 고기잡이 불
文甲風月문갑도의 아름다운 자연(글 읽는 소리)
仙接暮雲선접의 저녁 눈
平沙落雁모래밭에 내려앉은 기러기

國壽丹楓에서 '국수'는 덕적도 북리 소재의 높이 솟아 있는 국수봉이다. 높으니만큼 그곳의 가을 단풍을 어디서건 볼 수 있었다.

龍潭歸帆은 용담으로 돌아오는 돛단배이고 雲注望月은 운주산에서의 달구경이다.

黃海落照는 표현 그대로 황해바다의 낙조이다.

蔚島漁火에서 '울도'는 덕적도 남쪽 소재의 섬으로 그곳에서의 야간 고기잡이 불이 볼만했던 것 같다. 동쪽과 서쪽의 섬 끝이 울타리 모양이기에 울섬이라고도 한다. 야간의 고기잡이 불이 활모양으로 포진했다면 가히 볼만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울도 새우잡이가 한창'이라는 기사(조선중앙일보 1947년 10월25일)는 이를 반영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文甲'은 덕적도 남쪽에 위치한 '독갑도(禿甲島)'이다. 지명이 '민둥산'에서 유래됐는지 알 수 없지만 이후 문갑도(文甲島)로 바뀌었다. 구전에 의하면 그곳으로 피신해 왔던 학자가 글을 가르쳤고 집집마다 문갑(文匣)이 있어서 '글 문(文)'과 '궤 갑(匣)'을 합하여 문갑도(文匣島), 그리고 문갑(文匣)이 문갑(文甲)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덕적도사>(1985)를 집필하신 분이 '文甲風月'을 문갑도의 어떤 면과 결부했는지 알 수 없기에 '아름다운 자연'과 '글 읽는 소리' 두 가지로 재구해 보았다. 관견(管見)이건대, 덕적팔경에서 文甲風月 이외의 것들은 모두 시각과 관련돼 있기에 '風月'은 '글 읽는 소리(청각)'로 이해하는 게 나을 듯하다.

仙接暮雲은 선접의 저녁 눈이고, 平沙落雁에서 '평사'는 덕적도 소재의 서포리 해수욕장이나 밭지름 해수욕장의 모래를 지칭한다. 노송이 병풍처럼 서 있는 모래밭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 기러기의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한다.

한편 <옹진군지>(1989)에 등장하는 '덕적팔경'도 있다.

津頭汽笛진리 선착장의 기적소리
善尾燈臺선미도의 등대
蔚島漁花울도의 고기잡이 불
芳園櫻花벚꽃 동산
西海落照서쪽 바다의 떨어지는 해
明沙松亭깨끗한 모래와 소나무 정자
楓葉紅粧화려한 단풍
列島蜃樓신기루처럼 보이는 여러 섬

<덕적도사>에 없었던 津頭汽笛, 善尾燈臺, 芳園櫻花, 列島蜃樓가 등장한다.

진리 선착장의 기적소리(津頭汽笛)는 만남과 이별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선미도의 등대(善尾燈臺)는 덕적도 서북쪽 능동(陵洞) 해안에서 600m 거리에 있다. 무인도였지만 1937년 등대가 설치되고 관리자가 상주했다. 섬은 작지만 산이 높고(해발 233m) 산세가 험하여 악험(惡險)으로도 불렀다. 그런 공간에 등대가 위치하고 있기에 감상자들은 우뚝 솟은 모습에 압도되기 마련이다.

벚꽃 동산(芳園櫻花)과 화려한 단풍(楓葉紅粧)은 어느 장소를 지칭하는지 구체적이지 않다. 덕적도 전체를 꽃과 단풍으로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특정 지역에 대해 팔경을 선정하는 것은 자족적인 데 그치지 않는다. 그러한 선정에 타인들도 공감을 하면 특정 지역의 팔경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옹진군지>(1989)의 덕적팔경에서 구체적 장소가 적시되지 않은 경우에 대해 타인들이 선뜻 동의할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개인적 선정이되 보편적 동의를 얻어야 그것이 해당 지역의 팔경(절경)으로 확정되기에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한번 선정된 팔경이 고착되는 게 아니라 해당 지역의 자연 환경이나 인문 환경에 변화가 생기면 그것에 준해 바뀔 수 있다.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