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영인이도 업고 오지 않았으므로 여맹위원장한테 병문안을 가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왠지 자발로 여맹위원장을 찾아간다는 것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66호 노동교양소 안에서 기쁨조원으로 차출되어 부비서의 몸 시중을 들 때는 뱃속의 아이를 중절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어떤 일도 가리지 않고 해야 한다는 심정 때문에 깔개노릇(정부노릇)도 서슴지 않고 받아들였지만 출소 후에는 그런 짓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인 것이다.

 그렇지만 김유동 부비서가 이따금씩 자신의 친정 집을 찾아와 쉬고 가겠다고 할 때는 기쁨조원으로 있을 때처럼 김유동 부비서의 몸 시중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바람에 그녀는 노모 엄씨한테도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딸이 되고 말았다. 리민영 여맹위원장이 젊은 시절 여군으로 평양고사포부대에서 복무할 때 다친 부위가 나이를 먹자 다시 도져 사경을 헤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그녀는 당에서 김유동 부비서와 짝 지워 준 조강지처이고, 그런 조강지처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자신이 김유동 부비서의 성적욕구를 받아들이며 사실상의 씨앗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로서는 괴로웠던 것이다. 더구나 리민영 여맹위원장은 수령님과 악수까지 한 접견자가 아닌가.

 그런데 그녀가 그런 접견자의 남편을 빼앗아 부화질 놀음이나 일삼고 있다는 말이 암암리에 여맹위원장 귀에 들어가고, 그 말을 들은 여맹위원장이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고 분개해 당에다 신소라도 해버린다면 그녀는 이제 누구한테도 구제 받지 못할 만큼 부화 방탕한 여자가 되어 엄벌을 받을 것이 분명한 것이다.

 만약 길케 되면 이번에는 강영실 언니처럼 교화소로 끌려가게 되는데…기러면 우리 영인이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고아 신세가 될 것 같은 영인이의 앞날을 상상해 보니까 몸이 떨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런 경우는 정말 생각만 해도 가슴이 멎을 것 같아 몸서리가 났다. 제발 여맹위원장이 이승을 떠날 때까지 만이라도 김유동 부비서가 자기 집에 찾아오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는 김유동 부비서의 발길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 답답했다. 그녀는 부비서가 시킨 대로 여맹위원장을 찾아가 지금이라도 지난 날의 일들을 사실대로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바른 일일까 하고 고민하다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다시 눈길을 걸었다.

 해가 달아오르기 시작하자 바람이 더욱 기승을 부렸다. 얼굴을 때리는 눈바람을 받으며 걷는데도 가슴이 답답해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어떻게 해야 나이 어린 영인이를 고아원에 보내지 않고, 자기 손으로 정성껏 보살피며 함께 살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팠다. 그렇지만 아무리 괴롭고 머리가 아파도 얼마 살지 못할 것 같다는 리민영 여맹위원장은 한번 찾아보는 것이 사람의 도리일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