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현의 '사진, 시간을 깨우다'-6.'아시아의 마녀' 고향에서 카퍼레이드 하다
▲ '아시아의 마녀'라고 불린 백옥자는 1970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 투포환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다. 당시 인천시에서는 인천 출신 메달리스트들을 열렬히 환영하며 동인천역에서 시청(현 중구청) 까지 카퍼레이드 행사를 마련했다.
백옥자, 방콕AG 금메달 획득·테헤란AG 우승

월등한 체격에 개회식 입장 행렬 제외 비화도





드디어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이번 주 금요일(19일)에 개막한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90개로 종합 2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혹자는 아시아경기대회의 금메달을 가벼이 여길 수 있으나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45개국 중 금메달은커녕 동메달 하나를 획득하기 위해 온 힘을 쏟을 나라도 있다.

한국도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하나에 온 국민이 환호성을 지르던 적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진은 1970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 맹활약한 인천출신 선수들의 카퍼레이드 모습이다.

오픈카에 탄 선수들은 동메달이라도 목에 건 선수들이다.

그들은 서울에서 국민 환영회를 마치고 바로 인천으로 금의환향했다.

동인천역 광장에서 인천시장의 영접을 받은 후 검은 짚차에 올라타고, 그야말로 연도에 늘어선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축하 퍼레이드를 벌였다.

카퍼레이드 코스는 용동 마루턱을 넘어 경동사거리 거쳐 답동사거리에서 우회전해 인천시청(현 중구청) 마당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1960, 70년대 인천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면 으레 이 코스로 진행했다.

월남 파병 귀환 장병들과 무장간첩을 사살한 모범 용사들도 이 코스에서 시민 환영 퍼레이드를 벌였다.

사진 맨 앞 차에 탄 선수는 '아시아의 마녀' 백옥자이다.

그는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 14m57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육상이 아시아경기대회에서 12년 만에 쾌거를 이룩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건국 이후 국제대회에서 우리나라 여자 선수가 딴 최초의 금메달이었다.

백옥자는 1951년 십정동에서 6남매 중 외동딸로 출생해 주안국교를 졸업하고 인성여중에 입학했다가 숭의여중으로 전학해 농구와 배구를 번갈아 했다.

다시 박문여중으로 옮겨왔는데 이렇게 여러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은 순전히 남들보다 월등히 큰 체구 때문이었다.

175㎝에 65㎏로, 지금 기준으로 보면 평범한 체격이지만 당시에는 각 종목에서 손을 뻗친 보기 드문 '거구'였다.

체격은 이후에도 더 육중해져서 1970년 12월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할 때는 175㎝에 86㎏이었다.

이 때문에 개회식에 참가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한국 임원단은 백옥자를 개회식 입장 행렬에서 제외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체구가 다른 사람에 비해 월등히 크기 때문에 대열의 균형이 맞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마디로 선수단 입장 행렬의 폼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백옥자는 덩치 값을 확실하게 했다.

박문여고 시절인 1968년부터 정식으로 포환을 던지기 시작해 그해 열린 경기도체육대회에 나가 14m02로 한국 신기록을 수립했다.

이는 일본 선수가 보유한 아시아최고 14m43 기록에 다음 가는 성적이었다.

내친김에 같은 해 열린 전국체전에서 14m75으로 아시아 최고기록을 갈아치웠다.

백옥자의 집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늙고 병들었으며 송림동 현대극장 앞에서 콩나물 노점상을 하는 어머니가 가족의 끼니를 이어갔다.

효녀 백옥자는 집안 걱정으로 훈련에 매진하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지곤 했다.

건국대 2학년 재학 중 육상연맹회장의 주선으로 국민은행에 취업하면서 안정을 찾았고 1972년 뮌헨올림픽을 앞두고 맹훈련에 들어갔다.

서독 정부 초청으로 퀼른대학에서 전지훈련을 했지만 올림픽에서 자신의 기록보다 뒤진 성적으로 예선 탈락했다.

"국비로 뮌헨올림픽에 관광 보낸 꼴이 됐다"라는 비판이 일었고 "이제 백옥자도 한물갔다"라는 냉소도 들렸다.

그는 1974년 테헤란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정초부터 인천공설운동장에 매일 나가 포환을 던졌다.

하루에 1000번 넘게 포환을 던진 날도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딱 40년 전인 1974년 9월 10일 테헤란.

"야앗-" 그날 그의 괴성은 유달리 컸다.

4㎏의 검은 쇳덩이가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로 솟구쳤다.

16m28.

믿을 수 없는 기록이 나왔다.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아시아의 마녀'라는 별명을 만들어준 바로 그 경기였다.

백옥자는 현재 대한육상경기연맹 여성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