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현의 '사진, 시간을 깨우다'-1.맞아야 살 수 있다
▲ 1971년 4월 시민들이 전염병 예방주사를 맞는 모습.
1. 맞아야 살 수 있다

인천의 과거를 얘기하면 개화기의 모습이 크게 다가오지만 산업화 시대의 기억도 결코 간단치 않습니다. 인천은 대한민국 산업의 불씨를 켜오며 한때 우리나라의 끼니를 이어주던 도시입니다. 인천일보가 '인천 정체성 찾기' 시리즈로 1960년대와 70년대 '산업화' 시절의 인천 시간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기억을 사진과 글을 통해 시리즈로 더듬어 봅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그 속에서 땀 흘리고 있는 우리의 부모님 그리고 코 흘리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날이 더워지면 전염병의 두려움이 한층 높아진다. 197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 국민은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뇌염 등 '돌림병'에 많이 걸렸다. 호열자(虎列刺)로 불리던 콜레라는 '호랑이 호(虎)' 자를 쓸 만큼 공포 그 자체였다. 불결한 환경과 방역 시스템이 미비했던 1960년대 우리나라에는 콜레라가 세 번 창궐했다. 63년 316명, 64년 2명, 69년 137명이 콜레라에 걸려 사망했다.

1963년도의 콜레라 발생은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3년 9월 인천을 비롯해 서울, 부산 등 대도시는 물론 영덕, 완도 까지 콜레라가 창궐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긴급히 전국을 방역지구로 설정했다.
야권의 각 당 대통령 후보 측에서는 그해 10월15일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한 달 가량 연기해서 11월26일 국회의원 선거와 동시에 치르자고 주장했다. 통행금지 구역이 확대돼 사람들이 유세장에 모이질 않을뿐더러 선거 당일에도 콜레라가 완전히 퇴치되지 않으면 투표율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정부와 여당 측에서는 선거에 지장을 줄 만큼 크게 번지지 않을 것이라며 선거일을 고수했다. 선거 결과는 박정희 후보가 승리하면서 제 5대 대통령이 된다. 만약 이때 콜레라가 더욱 더 기승을 부렸다면 선거일도 연기되었을 것이고 역사의 물줄기는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

과거 인천은 전염병에 취약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7월 인천에 콜레라균이 돌아 30여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오십호 가량이 살던 도화동의 한 마을에서는 4명이 사망했다. 그들이 재배한 채소와 과일이 도심으로 들어간 것으로 파악한 보건 당국이 뒤늦게 출하된 농작물에 소독을 실시했다.

그해 인천에서 발생한 콜레라는 중국에서 넘어 온 것으로 추정되었다. 광복군과 전재민(戰災民) 등 1900명을 태운 선박이 중국을 떠나 6월4일 인천항에 입항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콜레라 환자가 발생했다. 나흘 동안 상륙하지 못했고 방역을 실시한 후에야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인천은 항구를 통해 전염병이 유입되곤 했다. 실제로 1963년 10월 구호양곡인 대만(자유중국) 쌀 4000t을 싣고 인천항에 들어 온 대륭호의 선원 한명이 콜레라 환자로 판명돼 시립병원 제민원에 격리 수용된 적이 있다.

보건 당국은 전염병이 돌 때마다 인천에 들어오는 외국선원과 해외여행이 잦은 미군 병사에 의해 콜레라가 전염되는 것으로 의심하곤 했다. 한때 북한이 콜레라균을 퍼뜨린다는 웃지못할 소문도 돌만큼 국민 모두 전염병에 예민했다.

인천에는 오래 전부터 전염병 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병원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덕생원이란 전염병 전문 병원이 설립되었다. 개원 당시 이 병원의 명칭은 '피할 피(避)자'를 써서 피병원으로 명명되었다. 전염병을 피하고 싶었던 절실한 마음이 담긴 이름이었다.

이 병원은 사정병원, 전염병원을 거쳐 덕생원으로 변경되었다. 도원동에 있던 덕생원은 6.25 전쟁 중 소실되었고 그 자리에 현재 중앙여상이 들어섰다.

점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방역 당국은 바로 주사기를 들고 길거리로 나섰다.

행인들은 너나 할 것이 없이 가던 길을 멈추고 주사를 맞았다. 당시에는 일회용 주사기도 없었다. 앞 사람이 맞은 주사기를 소독약 솜으로 한번 쓱 문지르고 다음 사람이 맞았다. 약이 부족했기 때문에 맞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근로자들은 공장에서, 일반 시민과 주부들은 길거리와 시장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방주사를 맞기 위해 줄을 섰다.

세월이 흘러 이제 전염병은 그 종류가 다양해졌고 더 흉폭해졌다. 콜레라, 장티푸스 대신에 싸스, 조류독감, 구제역, 신종플루, 에볼라 등 새로운 '돌림병'이 21세기 지구촌을 호심탐탐 노리며 돌고 있다.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