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이제는 그 말이 실감나게 귀에 들린다면서 다시 정동준 계장을 바라보았다. 정동준 계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이처럼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를 지향하는 사회와 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하는 사회는 세상사는 방법도 다르니까 늘 적응하는 자 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을 잊지 말아라….』

 『형님 말씀 명심하고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인구는 여태껏 알뜰히 보살펴 주고 직장까지 알선해 주어서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정동준 계장은 인구의 그런 모습이 또다시 마음을 아프게 해서 아내를 불러 술상을 좀 차려 오라고 했다.

 송영주는 남편이 인구삼촌을 불러 앉혀놓고 시국 돌아가는 형편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게 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왔다. 두 의형제 분이 늘 저렇게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사이좋게 지내면 옆에서 보는 사람도 얼마나 보기 좋은가 말이다. 그녀는 얼른 술상이나 차려 준 뒤, 그녀도 곁에서 시원한 맥주나 몇 잔 얻어 마시고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현관 문단속부터 먼저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현관 유리문 밖으로 생각지도 않던 초설이 내리고 있는 것이다. 송영주는 그때서야 은미와 은수가 겨울방학을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되짚어보며 펄펄 눈송이가 내려앉고 있는 바깥을 내다보았다.

 바람도 한 점 없는 밤하늘에서 함박눈이 소리도 없이 내려앉고 있었다. 만개 된 벚꽃송이처럼 탐스럽게 내려앉는 함박눈은 어둠에 묻힌 잔디밭과 정원을 온통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순식간에 바깥 세상이 은백의 세계로 뒤바뀌고 있는 순간을 혼자 지켜보고 있으니까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면서 가슴 한편이 들뜨는 것 같았다. 송영주는 첫눈 내리는 야경을 자기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느낌이 들어 남편과 인구 삼촌이 앉아 있는 건넌방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 첫눈이 내리고 있어요. 밖으로 좀 나와 봐요. 함박눈이 너무너무 탐스러워요.』

 『뭐라구요, 첫눈이 내린다구요?』

 인구가 방문을 열고 현관으로 나왔다.

 『네. 인구삼촌 이리로 나와 봐요. 벌써 3센치는 쌓인 것 같아요.』

 송영주는 어느새 바깥 잔디밭으로 나가 석등 위에 쌓인 눈을 뭉쳐 한 움큼 움켜쥐며 탄성을 질렀다. 인구도 덩달아 잔디 위에 내려앉은 눈을 움켜쥐며 눈을 맞았다.

 『햐! 남쪽에 내려와 살면서 모처럼 고향에서 내리는 푸진 눈을 구경하는 것 같네….』

 『북쪽, 인구 삼촌 고향에도 이렇게 바람 한 점 없이 함박눈이 내릴 때가 많아요?』

 『기럼요. 자고 나면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산과 들이 온통 딴 세상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수 없이 봤어요….』

 송영주는 그런 곳에 여행이라도 한번 가봤으면 여한이 없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