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준 계장은 잠시 말을 끊고 인구의 표정을 살피다 다시 입을 열었다.

 『1970년대는 어떠니? 국립묘지 현충문 폭파사건부터 시작해 남침용 땅굴을 파지 않았니,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니? 그것도 부족해 1980년대 들어와서는 외국의 국립묘지까지 쫓아가 대한민국 대통령과 수행장관들의 가슴에 폭탄까지 안기며 동족자해행위까지 일삼으며 전세계인의 이목을 찌푸리게 만들더니, 지난 1987년에는 칼기(KAL機) 폭파사건까지 일으켜 열사의 나라에 가서 민족적인 가난을 떨치기 위해 긴긴 세월 땀흘리다 조국으로 돌아오는 근로자들을 이국만리 창공에서 불귀의 객이 되게 지령을 내린 장본인이 누구니? 인구 네 눈에는 그것이 영웅적 행동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국제정치지도자들이 볼 때는 도저히 한 하늘을 이고 같이 살아 갈 수 없는 불구대천의 테러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어버리는 거야. 어디 그거뿐이니? 마약·양주 밀수에다 위조 달러까지 만들어 세계경제질서를 교란시키며 그야말로 전세계인이 금기시하는 못된 짓은 찾아가며 했잖니? 그만큼 전 세계인들이 싫어하는 짓을 해서라도 제나라 국민들을 잘 먹여 살렸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지금 북한 동포들의 생활이 어떠니? 아니할 말로 하루 세 끼 강냉이밥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잖니? 인구 너는 어릴 때부터 위대한 수령님과 통큰 지도자 동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배길 만큼 듣고 자라서 북한 최고통치자의 일거수일투족이 무조건 신의 행동처럼 위대해 보이고 존경스러워 보이겠지만 제3자의 눈에 비치는 북한 최고통치자의 모습은 그렇지가 않다. 너도 이제 그런 것 정도는 알아야 할 나이니까 전 세계인들이 왜 너와 같은 시선으로 북한의 최고통치자를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를 한번씩 생각해 보면서 살아라. 내가 분명하게 말하지만, 인구 네가 어릴 때부터 그토록 숭배하고 존경한 북한의 최고통치자는 국제정치무대에서 입에 담지 못할 혹평까지 받고 있다는 것도 명심해라….』

 인구는 도저히 그냥 넘어 갈 수 없는 듯 불만스러운 눈으로 정동장 계장을 바라봤다.

 『그게, 뭐 죄다 수령님 책임인가요? 미제와 남반부에도 책임이 있단 말입니다….』

 『물론 국제정치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라 네 말대로 미제와 남반부 최고통치자들한테도 일단의 책임은 있고, 국제정치무대에서의 시선도 곱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올림픽 특수 이후 최고의 경제적 호황을 누리면서도 기아에 허덕이는 북녘 동포들의 인도적 지원마저 외면하고 있다는 비난 때문에 북방정책으로 북한을 더욱 외롭게 고립시킨 노태우 정권이 물러가면 반드시 다음 정권이 어떤 새로운 남북협상카드를 내놓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긴긴 세월 동안 기아에 허덕이다 합병증까지 얻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이 세상을 떠나가는 북한 동포들 개개인의 운명을 생각하면 딱하기 그지없지만 그것이 분단 상태에 있는 약소민족이 당해야 하는 현실적인 불행인데 지금 와서 누구한테 그 아픔을 한탄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