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갑자기 심각해진 표정으로 정동준 계장을 바라 봤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안타깝지만 전쟁을 체험한 남북한의 정치지도자들이나 사회적 주역들이 제2선으로 물러앉거나 사망해 이 세상을 떠나가야만 남북교류와 협력의 새시대가 열릴 것 같아. 현재로선 칼기(KAL機) 폭파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태라 남쪽의 정치지도자가 북쪽의 정치지도들을 향해 회담을 하자는 말조차 꺼내기 힘든 상황이야. 그러니 인구도 제발 죽은 듯이 좀 엎드려 있어….』

 『제가 데모대열에 합세해 후배들이 데모를 어떻게 하는지 구경하고 싶다는 말이 형님한테는 그토록 걱정스럽게 들렸습니까?』

 인구는 계면쩍게 웃으며 정동준 계장을 쳐다봤다. 정동준 계장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담배를 한 대 붙여 물었다.

 『이 녀석아. 그걸 말이라고 하니? 네가 후배들과 어울려 데모대열에 낀다는 것은 북한으로 치면 7번사건에 가담하겠다는 말과 같은데 그렇게 되면 너의 법적 친권자인 내 입장은 뭐가 되니?』

 『저의 지나친 호기심이 형님을 괴롭힌 결과가 되었군요?『

 『제발 아무 데나 기웃거리지 말고 진중하게 좀 엎드려 있어라…그러다 보면 수년 동안 누적된 북한의 식량부족사태가 그쪽의 최고통치자들은 물론 주변국과 남쪽의 정치지도자들에게도 새로운 인식의 전환점을 만들어 줄 날이 있을 거야. 북한의 최고통치자들은 자국의 인민들이 하루 세 끼 끼니를 해결하지 못해 주변국의 국경을 넘어가 먹거리를 찾아 헤매는데도 그걸 통치적 차원에서 해결할 생각은 않고 동족간의 분쟁이나 일삼으며 88서울올림픽 이후 조성된 동북아시아의 평화적 상태마저 깨부수고 있다는 국제적 비난이 들려오면 입지가 더욱 어려워지게 되므로 과거와 같은 모험적 행동은 함부로 못하게 돼….』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가 언제 그런 것 무서워했습니까?』

 인구는 국제적 비난 따위는 조금도 두려울 게 없다는 듯 혼자 웃었다. 정동준 계장은 동족의 일원으로서 조금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구를 꾸짖었다.

 『그렇지 않다. 사람이 혼자서는 세상을 살 아 갈 수 없듯 국가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제정치무대라는 곳에서 정규적으로 만나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국익을 도모해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는 지금껏 국제정치무대에서 해놓은 일이 무엇이 있는가 너도 한번 생각해 보아라. 1950년대에는 스탈린이라는 사람과 짜고 동족의 가슴에 6·25라는 것을 안겼고, 1960년대에는 124군부대라는 것을 만들어 남쪽의 청와대나 까부수겠다고 김신조 일당을 내려보내고, 그것도 부족해 울진·삼척사태까지 야기시켜 철부지 어린아이들까지 도륙하다 이승복 어린이한테는 「공산주의는 싫어요!」 하는 소리까지 들었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