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정동준 계장에 말에 이렇다 대꾸 한 마디 없이 듣고만 있었다. 정동준 계장은 어릴 적 자신이 겪은 배고픔의 고통을 되돌아보며 북한 동포들이 당하고 있는 배고픔의 실상을 대변해 주었다.

 『인구 너는 북한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가장 부유하게 잘살 때 태어난 세대라서 하루 세 끼 먹던 북한 동포들이 두 끼로 줄이고, 그것도 못 이어서 두 끼에서 한 끼로 먹거리의 질과 양을 줄이며 배고픔과 싸우다 다른 합병증을 얻어 수십만 명씩 죽어 가는 고통이 얼마나 가혹하고 비참한가는 모르고 있을 거야. 그건 장기간 배고픔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야….』

 『그건 인정합니다. 전 사실 인민군에 초모되었을 때도 신대원훈련 받을 때나 배고픈 고통을 좀 당했을까, 그 이후엔 민경부대에서 복무했기 때문에 사실 배고픈 고통은 그렇게 겪어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형님은 북한 동포들이 가장 고통을 당하는 시기를 언제쯤으로 보고 있습니까?』

 『나는 그 극점을 1993년이나 1995년 춘궁기쯤으로 보고 있다. 그때쯤 되면 두만강 접경지대에서 북한동포들의 대탈출극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아…그런데 그 시기가 북한동포들의 입장에서 보면 배고픔을 참는 인내력의 최고 정점이 되는데 비해 북한 정권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통치자의 입장에서 보면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묘책이 다 소진되는 시기가 돼….』

 『형님은 그럼 그 때를 남북교류와 협력의 시대가 열릴 시점으로 보십니까?』

 『북한 내부에 특별한 변고가 없는 한 나는 그 때가 시작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어…그런데 말이야,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최고통치자의 자연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야. 그리고 그의 정치권력을 승계 할 공식후계자가 지도자수업이 잘 되어 있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해….』

 인구는 정동준 계장의 마지막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물었다.

 『공식후계자의 지도자수업이 잘 돼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세계의 역사를 더듬어 봐도 최고통치자의 보호 아래 실질적 지도자수업을 가장 오랫동안 받은 인물은 북한의 당중앙이 현재까지는 최고야. 1970년대 중반 항일빨찌산 1세대들에 의해 밀실에서 후계자로 거명돼 암암리에 지도자수업을 받아오다 6차 당대회(1980년)에서 공식후계자로 천명되었으니 벌써 십오 년이 넘었잖아. 전문가들의 건강진단에 의하면 북한의 최고통치자는 아직도 5∼6년은 더 살 것 같다고 하니 그렇게 되면 결국 당중앙은 20년 이상 실질적 정치권력을 휘두르며 권력승계를 위해 정치적 밑작업을 한다는 소리인데, 인구 너도 한번 생각해봐라. 세상에 어느 정치지도자가 아버지의 절대권력을 이용해 20년 이상 북한의 정치권력기구(당기관·행정기관·군기관) 내에 충성을 맹세하는 자기 사람들을 앉힐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