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뜻은 이해할 수 있겠다면서 인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 북한으로 되돌아가서 옛날처럼 생활하라고 한다면 못할 것이라고 자본주의 물질문명에 빠진 자신의 변한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문을 보였다. 인구가 말했다.

 『그렇지만 굳게 닫힌 북녘사회에 어떻게 자본주의 물질문명을 전파합니까? 북녘의 핵심 간부계층들은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를 정점으로 꽁꽁 뭉쳐 방벽을 치고 있는데 말입니다.』

 정동준 계장은 피우고 있던 담배를 비벼 끄며 자신의 평소 지론을 꺼냈다.

 『북한의 만성적 식량부족사태가 남북교류와 협력의 시대를 앞당기는 열쇠가 될 것이야….』

 『전 그렇게 보지 않는데요?』

 인구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정동준 계장은 신념에 찬 표정으로 자기 이야기를 계속했다.

 『두고 봐. 가뭄이나 홍수로 일 년 농사를 피농하지 않고 잘 지어도 북한은 연간 150만 톤 이상의 식량을 외국에서 도입하지 않으면 절대 배급량이 모자라는 상황이야. 그런데 자연적 재해나 이상기온으로 2∼3년만 흉작이 계속되면 식량의 절대 배급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북한은 비상조치를 강구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김부자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정치권력의 핵심 실세들은 계속 권좌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자기들이 목숨을 부지하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무슨 대안을 마련해야겠지요.』

 『그럼 그 대안이라는 것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자. 어떤 것이 있을 수 있겠어?』

 『우선 우방국가들을 찾아가 식량을 원조 받는다든가, 수입을 해온다든가, 따지고 들면 방법이야 많겠지요.』

 『맞다. 우방국가들로부터 식량을 원조 받든지, 아니면 북한이 달러나 식량과 물물교환이 가능한 현물을 들고 나가서 수입해 와야만 15일에 한번씩 배급을 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식량의 절대 배급량 부족으로 북한 동포들을 강냉이밥으로도 먹여 살릴 수가 없다. 만약 북한의 최고통치자와 그 밑의 핵심지배세력들이 당면하고 있는 식량난을 통치적 차원에서 해결하지 못해 2000만 북한동포들에게 한 달에 두 번씩 식량배급을 못했다고 가정했을 때 북한 동포들은 어떻게 되겠어?』

 『한두 번은 몰라도 장기간 대책 없이 식량배급을 못하면 우선 말을 듣지 않겠지요. 굶어죽지 않기 위해 식량부터 구하러 다녀야 하니까요….』

 『그렇겠지. 사회주의 혁명도 살자고 하는 것이지 굶어 죽자고 하는 것은 아니니까…그런데 여기서 인구 너한테 한번 물어보자. 네가 볼 때, 풍작을 해도 연간 150만 톤 이상씩 절대 배급량이 부족한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이 자력갱생이나 주체농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인구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하기 싫어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