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준 계장은 인구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절대권력자가 시해된 남쪽의 10·26 이후를 회고해 봐도 그 변화의 추이는 대충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구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이나 서구의 민주주의 선진국가들처럼 자신감 있게 사회 전체를 확 열어버리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남쪽은 남쪽대로의 고뇌, 가령, 빈부격차와 있는 자들의 방만한 사치 풍조로 조성되는 사회적 위화감, 6·25 체험세대들의 선병질적(腺病質的)인 반응 때문에 사회 전체를 자신감 있게 확 열어버릴 수도 없단 말입니다. 만약 이런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은 채 성급한 통일론에 빠져 사회 전체를 확 열었다 하면 북녘의 극우세력들이 어떤 수단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혁명에 의한 재통합을 기도할 것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북관계는 또 아웅산사태 때나 지난 1987년의 KAL기 폭파사건 때처럼 험악해지기 때문에 남북 상호간의 합의에 의한 평화적 통일방안은 저의 시각으로는 금세기 말까지는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정동준 계장은 인구의 논리 정연한 정치적 식견 앞에 새로운 이질감을 느낄 지경이었다. 문화·예술분야나 철학분야는 남쪽사회에서 대학교육까지 받았는데도 고등학교 졸업생 수준밖에 안 되는 녀석이 정치분야만 유독 똑똑하고 유창하게 보였던 것이다. 정동준 계장은 인구의 내적 성장에 대해 대견해 하면서도 겉으로는 비꼬듯이 이죽거렸다.

 『너 어떻게 그 분야에 대해선 그렇게 잘 알아? 나 몰래 북한으로 넘어가서 다시 정치 사상교육 받고 왔어?』

 『하이구, 형님두…제 고향 땅에서 부모형제가 고통 당하고 있는데 그 정도도 관심이 없겠습니까?』

 『그래, 그건 네가 남북관계를 바로 본 것 같아 내가 농담 한마디했다….』

 정동준 계장은 담배를 한 대 붙여 물면서 다시 인구를 바라보았다. 인구의 눈에서는 광기가 흐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감각기관은 더듬이의 촉수처럼 곤두서는 느낌도 들었다. 정치적 식견을 늘어놓을 때 보면 인구는 늘 그랬다. 정동준 계장은 비정상적으로 지식이 채워진 한 인간형을 보는 듯해 넋을 잃고 있는데도 인구는 신들린 듯이 월남식 통일론을 강조했다.

 『남과 북이 이처럼 통일에 접근해 가는 방법상에도 상반된 견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저의 견해로는 우리 민족이 서로 오고 가면서 혈육들의 안부라도 물으면서 살려면 최소 20∼30년 정도는 더 시간이 흘러야만 가능할 것 생각이 드는데 그때까지 우리 오마니 아버지가 살아 계실지,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들 얼굴만 생각하면 머리가 깨질 것 같습니다. 어떻게 부모님 가슴에 그렇게 아픔만 심어주는 자식이 되고 말았는지….』

 인구는 또 울상이 된 채로 잠시 창 밖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