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준 계장은 뭔 말인가 싶어 되물었다.

 『뭘 말이야?』

 인구는 쭈뼛쭈뼛하다 며칠째 고민해 오고 있던 심중의 말을 꺼냈다.

 『결혼 날짜하고 예식장 같은 거 말입니다.』

 『임마, 그런 것까지 내가 다 얘기해 주어야 되니? 이제 기영 씨하고 상의해 네가 좀 알아서 결정해.』

 정동준 계장이 좀 싸늘하게 욱대기자 인구는 금시 시선이 달라지면서 난감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표정이었다. 여태껏 한집에서 4년 넘도록 같이 살면서 보아온 일이지만 인구는 『네가 알아서 하라』는 말을 제일 싫어했다. 그래서 정동준 계장은 가능하면 그런 말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 날은 자신도 모르게 불쑥 그런 말이 튀어나와 인구를 외롭게 만든 격이 되어 버렸다.

 『결정을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해 놓은 것을 듣고 형님의 생각을 말씀 해 달라는 겁니다.』

 인구는 갑자기 공격적인 인간형으로 변하면서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에 나온 북측 대표처럼 표독한 시선으로 정동준 계장을 바라보았다. 정동준 계장은 그것이 인구의 속성이라고 생각했다. 인구는 억압과 냉대를 가하면 표독하게 살기를 뿜으면서 공격성을 보였다. 그러다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나 주변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거나 대화하는 상대방이 나긋나긋하게 웃고 속삭이듯 피부를 맞대면 그만 속이 거북한 사람처럼 그 부드러운 분위기에 동화되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질성을 보였다. 정동준 계장은 툭 쏘듯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빨리 말해 봐.』

 『결혼식은 졸업식 다음날 했으면 하고, 예식장은 신혼예식장이나 행복예식장 같은 데를 예약하고 싶습니다. 살림집은 이 부근 어디 방이라도 한 칸 얻어 형님네와 가까이서 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정착금 주고, 사회단체가 네 안사람이 될 사람과 같이 행복하게 살아라 하고 아파트까지 제공해 주었는데, 그런 아파트 다 전세 주고 너는 처갓집 부근에서 셋방살이나 하겠다는 말이냐? 도대체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그렇게 궁하게 사는 모습 보이려고 해?』

 정동준 계장은 그런 식으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해놓고는 잠시 자신을 반성하는 빛을 보였다. 왜냐하면 욱하는 성질 때문에 말은 그렇게 막 했지만 그의 몸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남쪽 사회 관리의 피가 흐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무서우리만큼 직감이 빠른 인구가 『형님! 기영 씨하고 결혼해 사는 모습까지 사진 찍어 심리전 자료로 쓸 생각은 마십시오.』 하는 표정으로 건너다보면서도 그는 엉뚱한 말로 얼레발을 짚었다.

 『누구 좋은 일 시키기는요. 그냥 조용히 결혼해서 살고 싶어서 그랬어요. 괜히 화려하게 결혼하면 사진 많이 찍히고, 거대한 예식장 차지하면 귀순용사 어쩌구 하면서 앞에다 플래카드까지 써 붙여야 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