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스물 여섯이면 이제 제 분수와 처지 정도는 알만한 나이야.』

 정동준 계장은 계속 씩씩거리면서 아내마저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다.

 『나이야 스물 여섯이지만 인구 삼촌이 이 땅에 와서 살은 지 몇 년 되었어요? 이제 4년 조금 넘었잖아요?』

 이 사람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되지도 않는 말을 늘어놓는 게야, 하고 정동준 계장은 못마땅한 시선으로 송영주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은미하고 은수 키워 봤으면서도 왜 그래요? 제발 그러지 말아요. 당신 그런 말 할 때마다 나는 정말 당신이란 사람이 달리 보여요….』

 송영주는 정동준 계장이 들으라는 듯 은미와 은수의 버릇을 들먹였다. 정동준 계장은 송영주가 두 자식의 버릇을 들먹일 때마다 아내 앞에 백기를 든 사내가 되곤 했다. 방배 초등학교 5학년생인 은미는 정동준 계장이 어릴 때부터 크리넥스 티슈로만 코를 닦아주며 키웠는데, 그렇게 키운 은미는 요사이도 손수건이나 두루마리 화장지로는 코를 닦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방배초등학교 2학년생인 은수도 마찬가지였다. 휴지는 현관 모퉁이에 있는 휴지통에 버려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가르쳐 왔는데, 은수는 그런 가르침을 받은 이후부터는 꼭 휴지를 현관 모퉁이에 놓여 있는 휴지통에만 버렸다. 방에도 조그마한 휴지통이 있고, 식당방 입구에도 휴지통이 놓여 있는데도 은수는 손에 휴지만 들었다 하면 가까이 있는 휴지통을 마다하고 꼭 현관으로 나가 휴지를 버리고 왔다. 은수의 눈에는 방안에 있는 휴지통과 식당방 입구에 놓여 있는 휴지통은 휴지통으로 보이지 않는 게 분명했다.

 정동준 계장은 자기 자식들이 그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유아기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낄 수 있었다. 또 인간이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의식의 창이 트일 때 부모나 스승에 의해 반복적으로 주입된 정보나 지식은 그 인간이 성인이 된 뒤에도 무의식적인 지향성을 보일 만큼 한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관행 속에는 뚜렷한 목적의식이나 사상성 같은 것이 가미되어 있지 않았다. 그냥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송영주는 인간의 그런 본질적인 속성(屬性)을 강조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북녘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와 지배세력들의 강압적인 획일화 교육에 의해 인격이 형성된 인구 삼촌을 너무 가혹하게 내몰지 말라는 것이었다. 인간의 무의식적인 관행이 인식력에 의해 수정되고 자신의 의지에 의해 교정되려면 인간의 두뇌가 응용력과 창조력을 발휘할 때라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넘치는 애정과 인간애에 함몰되어 격정적인 지시나 꾸지람을 남발하면 인구 삼촌이 정동준 계장의 심성을 의심하게 되고, 타인의 눈에 비치는 정동준 계장의 겉모습만 가혹하고 비열한 인간형으로 오인되기 쉽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