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이전부터 '인천해관관사'로 사용
1889년 이전부터 '인천해관관사'로 사용
  • 김진국
  • 승인 20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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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장소 '구 라파치아웨딩홀' 부지
   
▲ 1885년경 제물포사진. 이 사진은 인천해관세무사관사가 지어질 당시인 1880년대 개항기 촬영된 것으로 당시 제물포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당시 제물포는 한적한 바닷가마을이었으나 개항을 하면서 인천해관세무사관사와 같은 건물이 하나 둘 들어서며 이전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자료제공= 해관사료 수집연구가 김성수씨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됐던 장소인 인천시 중구 북성동 3가 8-3 '탱고스튜디오'(구 라파치아웨딩홀) 부지(인천일보 9월16·17일자 1면)에 세워진 건물은 1889년 이전부터 '인천해관세무사(이하 인천해관)관사'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처음 밝혀졌다.

인천해관관사 자리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문호개방 요구가 거세던 19세기 후반 본래 조선정부로부터 미국이 영사관 자리로 할당받은 터로, 미국인 사업가 찰스 헨리 쿠퍼(C.H.Cooper)가 이 자리에 건물을 지은 뒤 1884~1889년 사이 건물 소유권이 조선정부로 넘어갔다.

미국인 의료선교사이자 주한미국총영사였던 알렌이 쓴 <한국연대표>에 따르면 '미국과 조선사이의 조약이 한 임시로 친 텐트에서 서명되었는데 정확한 지점은 현재 인천해관관사가 들어선 지역으로 원래 미국정부의 영사관터로 할당된 곳이었고, 영사관 용도로 미국인 C.H.Cooper가 현재의 건물을 지었는데 나중에 미국정부는 권리를 넘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자리는 조약이 체결되던 1882년만 해도 건물이 없던 빈 터로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임시 천막을 치고 진행됐으며, 이후 1885년 쯤 쿠퍼가 영사관 건물을 완공했다. <사진 참조>


   
 

그러나 막상 건물을 완공하자 쿠퍼에게 건물을 짓도록 한 미국정부가 건물매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쿠퍼는 건축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건물매각에 나서 이를 처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쿠퍼는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 접촉해 매매계약을 추진했으나 미국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고, 이후 인천해관관사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매입과정과 일정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곳은 1959년 12월23일 개국한 'HLKX 방송국'(이후 극동방송으로 이름이 바뀜)으로 한동안 사용됐다가, 지금은 '탱고 스튜디오'(구 라파치아웨딩홀)가 들어서 있다.

실제 해관 자료수집 연구가 김성수씨가 제공한 1885년 경 제물포사진을 보면 우측 언덕에 인천해관관사가 있으며 중턱쯤 청국영사관 모습이 보인다.

현재 파라다이스 호텔 아래 쪽으로 왼 편에는 인천해관청사와 검사소, 보세화물창고 2동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진국기자 freebird @i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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