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 논란 종결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 논란 종결
  • 김진국
  • 승인 201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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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확인자료 보도
화도진·파라다이스호텔·제3의 장소 → 구 라파치아웨딩홀 입증
   
▲ 향토사학자인 최성연 선생이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지라고 주장했던'화도진'에는 조약 체결당시의 모습을 재연해 놓았고, 박철호 목사가 주장했던 파라다이스 호텔에는 기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번 문서 발굴로 새롭게 확인된 체결장소에 대해 역사학계와 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친 후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다. /박영권기자 pyk@itimes.co.kr


인천시 중구 북성동 3가 8-3 '탱고스튜디오'(구 라파치아웨딩홀)가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인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문서가 발견(인천일보 9월16일자 1면)됨에 따라 체결장소가 어디냐는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1882년 5월22일 조선이 서양국가 중 최초로 미국과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를 놓고 지금까지 학계에선 '화도진'과 현 '파라다이스호텔', 그리고 '제3의 장소'로 알려져왔다.

체결장소에 대해 가장 먼저 공식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킨 사람은 향토사학자 고 최성연 선생이다.

그는 1959년 간행한 <개항과 양관역정>에서 미국 선교사이자 인천 내리교회 목사였던 존스 선교사가 1901년 1월에 <코리아리뷰>(The Korea Review)란 잡지에 쓴 '새로운 세기'(The New Century)라는 글을 근거로 조약 체결장소를 '화도진'이라고 설명했다.

그 때까지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대한 관심은 인천에서도, 전국적으로도 미미했지만 그가 이같은 주장을 던짐으로써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는 세인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최성연 선생의 주장에 따라 체결장소는 점차 화도진으로 굳어졌고, 조미수호통상조약 100주년을 앞둔 1981년 12월11일, 한 국내 전국지는 화수동 134번지 일대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장소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현장답사까지 이뤄졌는데 답사엔 당시 최성연 선생과 최영희 국사편찬위원장, 동덕모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김원모 단국대 사학과 교수, 안치순 인천직할시 부시장이 동행했다.

인천시는 이후 화도진이 조약체결지라며 표지석을 세우고 화도진을 복원한 뒤 관광자원으로 활용해 오고 있다.

이에 대한 이견을 제시한 사람이 바로 박철호 목사다.

박 목사는 인하대 사학과 박사과정이던 2000년대 중반 '조미수호통상조약체결 장소 연구-인천 화도진은 조미수교통상조약 체결지가 아니다'란 논문을 통해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에 대한 연구를 진척시킨다.

박 목사는 1893년 9월6일자 인천 감리서가 중앙에 올린 지도를 근거로 세무사 관사가 별도의 건물이 아닌 세관청사에 있었던 것으로 보고, 이 자리가 조약체결지라는 연구결과를 내놓는다.

그는 체결장소는 바로 화도진이 아닌 현 파라다이스 호텔부지 입구 쪽 경내라고 밝힌다.

이후 2006년 파라다이스호텔에 '한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란 표지석이 세워진다.

이 연구는 그러나 체결장소를 정확히 짚어냈다기보다 화도진이 체결장소가 아님을 증명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박철호 목사도 16일자 인천일보 보도를 접하고 "내 연구의 핵심은 화도진이 체결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고민거리가 해결됐으며 중구청이 그곳을 매입해 박물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인천 한 세기>의 저자 신태범 박사는 실제 체결장소인 'HLKX 방송국'을 언급한 바 있다.
 

   
▲ 파라다이스호텔 앞 한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 기념비. /박영권기자 pyk@itimes.co.kr


HLKX 방송국은 현재 체결장소로 알려진 북성동 3가 8-3에 1958년 12월23일 세워졌던 방송국이다.

또 강옥엽 인천시사편찬위원회 전문위원 역시 자유공원 어딘가의 제3의 장소에서 조약 체결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는 화도진, 파라다이스호텔부근, 제3의장소 등 세 가지 의견으로 나뉘어져 지금까지 흘러왔다.

그러나 이번에 현직 관세청 서울세관 공무원이면서 해관사료 수집연구가 김성수씨가 개항 당시 첨부된 제물포지도를 발굴함으로써 체결장소에 대한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로써 개항과 관련한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해 남길 수 있게 됐다.

/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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