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달이 밝은 밤하늘을 쳐다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밖에 소변을 보러 나갔던 정동준 계장이 자리에 앉으면서 한 마디 했다.

 『잊어버리고 살아. 아무 데나 정 붙이고 살면 다 고향이야. 아, 남쪽에 살면서도 고향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좀 많아. 우선 나부터도 그렇잖아.』

 『이이는 괜히 신경질적인 반응이셔! 삼촌 같은 입장에서는 마누라도 없고, 토끼 같은 자식도 없으니 부모형제 사는 고향이 그리운 건 정한 이치인데 서로 위로해 주며 살 줄 은 모르고 그저 파쇼적으로 짓누를 생각만 한다니까….』

 송영주는 정동준 계장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타박을 했다. 정동준 계장은 아내의 이야기도 맞다 싶어 딴전을 부렸다.

 『술이나 한 잔 더 마시고 잊어버려. 지금은 네가 홀몸이고 거느린 식솔도 없으니까 고향이 그리운데 결혼해 자식 낳고 그 자식들과 살 비비면서 살다보면 또 살아가게 돼.』

 송영주가 그 말은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학교 졸업하고 나면 곧장 결혼해요. 삼촌은 졸업만 하면 군대에도 안 가고, 대한민국 정부가 직장까지 마련해 주니까 곧장 결혼해도 되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을 믿고 결혼해 줄 처녀가 있겠습니까?』

 『맨 날 같은 과 여학생들과 데이트하시면서 괜한 소리 하시는 거 아니에요, 삼촌?』

 송영주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인구는 마시던 술잔을 놓으며 완강히 도리질을 했다.

 『헛소리 아니에요, 형수님! 같은 과 여학생들은 저한테 길 가膝쳐 주고 서울이 이런 곳이다 하고 명물 소개시켜 주는 입장이지 어

 떤 정분이나 연애 기분으로 같이 다니는 것은 아니란 말이에요….』 송영주는 그 말은 이해가 된다면서 인구를 보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중매 한번 설께요. 사실 어제 오기문 학생의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신 것은 둘째딸 혼사문제 때문에 왔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묵묵히 듣고만 있던 정동준 계장이 아내를 보고 물었다. 송영주는 어제 오기문 학생의 어머니가 집에 놀러 왔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자초지종을 늘어놓았다.

 『오경택 선생님의 둘째딸이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반포전화국에 취직했잖아요. 그런데 얼굴도 예쁘장하고 하니까 여기저기서 중매가 들어오는 모양인가 봐요. 그렇지만 오경택 선생님은 인구 삼촌 대학 졸업하고 나면 고향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면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니까 오기문 학생의 어머니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면서 어제는 아주 마음 잡숫고 찾아오신 것 같아요. 형수 역할을 하고 있는 내 생각은 어떠며, 또 인구 삼촌은 행여 사귀는 여자라도 없는지, 두루두루 살펴보러 왔다면서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 쪽에서 별로 내키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면 다른 데서 중매 들어올 때 혼처를 물색해 보겠다는 눈치예요. 어머님의 말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