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는 인구에게 있어서 남쪽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막걸리처럼 향수가 배어 있었다. 사관장과 함께 화물자동차를 타고 후방사업을 하러 돌아다닐 때 추위를 쫓기 위해 맥주 보다 소주를 즐겨 마셨다는 것이었다. 소주를 구할 수 없으면 식초나 알콜에다 물을 타서 한 대접씩 마시며 취기를 느꼈기 때문에 인구는 맥주보다 소주가 월등 좋다는 것이었다.

 안주를 먹는 버릇도 그렇다. 정동준 계장의 식성으로는 독주를 마실 때는 꼭 기름진 고기 안주가 뒤따라야 안심하고 술을 마시는데 비해 인구는 장아찌나 깻잎 절여 놓은 것을 술안주로 즐겨 먹었다. 요사이는 곧잘 기름진 음식도 소화시켰으나 그의 집에 처음 올 당시만 해도 인구는 고기만 먹고 나면 금방 따발총을 쏘듯 설사를 해댔다. 그런 선입감 때문에 인구는 육식 자체에 대해 한동안 심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다. 정동준 계장이 인구에게서 느끼는 문화적 이질감은 이 외에도 많았다. 색상에 있어서도 그렇다. 정동준 계장은 중간색 계열의 밝은 색을 좋아하는데 비해 인구는 원색 계열의 어두운 색을 좋아했다. 취흥을 즐기는 법도 그렇다. 정동준 계장은 술만 마셨다 하면 전축의 볼륨을 한껏 높여놓고 「홍도야 울지 마라」부터 시작해 「울고 넘는 박달재」까지 쫘악 뽑아내고, 그래도 한이 차지 않을 때는 빠른 디스코 풍의 음악을 틀어놓고 아내 송영주, 딸 정은미, 아들 정은수, 그리고 자신까지 어우러져 땀이 줄줄 흐르도록 춤을 추는데 비해 인구는 술만 먹었다 하면 이를 닦고 들어가 술을 안 먹은 척 내숭 떨며 자리에 눕기 바빴다. 보다 못한 송영주가 다가가 문을 두들기면서 『인구 삼촌! 술 잡숫고 왜 금방 주무셔요. 같이 춤추면서 놀다가 술 깨워서 주무셔요』 하고 외치면 인구는 『나는 춤 출 줄 몰라 도저히 못 끼겠어요…』 하면서 송영주의 권유를 기어이 뿌리쳤다. 인구를 데리러 갔다가 허탕치고 온 송영주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안타까워했다.

 『인구 삼촌은 왜 술만 드셨다 하면 저렇게 음울한 표정으로 뒤로 빠지죠?』

 『술 먹고 노는 게 어디 그냥 되는 줄 알아? 그것도 문화야. 북쪽에서 도둑 술 퍼마시고 뒤로 숨는 버릇이 몸에 배어서 그래. 편하게 자도록 놔 둬….』

 송영주는 뭔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안타까워하다 에어로빅 하듯 그 펑퍼짐한 엉덩판을 디스코 가락에 맞춰 실룩거렸다.

 한바탕 가족들과 어울려 땀을 흘리고 난 뒤 정동준 계장은 세면장으로 땀을 씻으러 갔다.

 그때 인구의 방에서 웅얼웅얼 하는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이 무슨 괴변인가 싶어 정동준 계장은 문틈으로 귀를 모았다.

 『낳으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애쓰는 마음 가이 없어라. 진자리….』

 인구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를 듣다 말고 정동준 계장은 쓴 입맛을 다셨다.

 『이런 맹추 같은 녀석! 가족들끼리 같이 합석해 놀기는 싫다는 녀석이 혼자 돌아앉아 청승맞은 노래나 불러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