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 동맹이론 동북아 외교사 첫 적용 … 해상무역 허브·조선술 조명
판보싱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미국 국제정치학계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하버드대학 월트 교수의 동맹이론을 동북아 고대사에 적용한 국내 박사학위 논문에서 백제의 국력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금까지 백제는 한반도의 서남부 모퉁이에 자리잡아 고구려와 신라의 압박을 받다 나당연합군의 공세에 멸망한 비운의 왕국으로 알려져 있다.

오는 8월 인하대 정치외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중국 길림성 출신 판보싱(29·여·潘博星·사진)씨는 논문 '동북아에서 강대국의 부상과 주변국의 동맹전략 선택: 백제와 신라의 사례 연구'를 통해 백제의 국제적 위상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제는 중국의 남조와 왜를 연결하는 고대 해상무역의 허브국가였고 군사적인 해양동맹 네트워크의 중심국가였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강대국에 종종 편승동맹을 선택했던 신라와 달리 백제는 일관되게 균형동맹을 유지했던 점을 들었다.

현대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 동맹이론을 고대 동북아 외교사에 적용한 것은 본 연구가 최초이고, 그러한 맥락에서 백제의 국력이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사실의 발견은 국내 최초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최초의 연구 성과다.

강대국이 부상할 때 주변 약소국들은 서로 힘을 합쳐 강대국에 대항한 균형동맹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강대국에 투항하는 편승동맹 중 하나를 선택한다고 한다.

특히 상대적 약소국은 균형보다 편승을 선택하는 예가 적지 않고 신라의 경우가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신라 진흥왕의 팽창기 이후 백제는 한반도 영토가 가장 작았을 때도 균형동맹을 선택했는데 이점은 백제의 국력 요소가 한반도 밖에 또 존재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라고 한다.

백제는 해양술과 조선술의 선진국이었고 황해의 제해권을 무기로 모자란 국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판씨는 이런 점에서 소위 백제의 요서진평 진출설도 그 규모를 확증하기 어렵지만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특히 중국 정통사서에서 백제 동성왕이 중국 남조에게 자신의 신하들을 산동성 주변의 지방관리로 임명을 요구한 기록도 당시의 동북아 국제관계를 냉정히 분석할 때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추정했다.

판씨는 또한 논문에서 중국의 북제서에 의하면 571년에 백제 위덕왕을 사지절도독동청주제군사동청주자사(使持節都督東靑州諸軍事東靑州刺史)로 책봉했는데 이는 당시 백제가 산동성(청주) 동쪽 지역에서 실질적인 행정권을 행사했음을 말한다고 밝혔다.

한편 국내에서는 일본 이소노가미신궁에서 발견된 칠지도의 명문에 제후라는 개념이 나오는 것을 놓고 문맥상 일본 열도 일부지역에 일시적으로 백제의 제후국이 있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심사위원장인 김의곤 인하대 사회과학대학장은 "판 박사가 중국 산동대학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한 덕분에 25사 등 한문으로 된 중국측 사료 원문 등 방대한 사료의 분석이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현재 일본 고베대(神戶大)에 교환교수로 체류 중인 지도교수 남창희씨는 이번 연구결과를 하버드대의 월트 교수 본인에게도 통보했다.

남 교수는 "동북아 고대국가들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해양활동이 활발했으므로 국력의 지표 중 해양력과 특히 해양동맹 네트워크 조직력을 제기한 것은 이 논문의 새로운 이론적 공헌"이라고 평가했다.

판씨는 "향후 사료를 보완해 한국에서 단행본으로 출판하고 이어 중국어로도 번역할 계획"이라며 "당분간 한국 대학에서 강의하다 귀국해 중국을 대표하는 현실주의 동맹이론 연구자로 성장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칭우기자 chingw@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