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숙은 광성이 어머니의 손을 마주 잡고 눈물을 닦아대다 들고 있는 손가방을 열었다. 손가방 속에는 가족들이 독한 감기에 걸렸을 때 해열제로 쓰는 아스피린과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하는 페니실린 주사약이 들어 있었다. 정남숙은 그 약을 백창도 과장 부부에게 석별의 아픔을 달래는 선물로 주고 가고 싶어서 광성이 어머니를 한옆으로 끌어 당겼다.

 『이게 뭡네까?』

 광성이 어머니가 정남숙이 건네주는 아스피린 봉지와 페니실린 주사약 몇 병을 받으며 놀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얼마 전에 인화 할머니가 기침을 하시면서 자리에 누운 적이 있었어. 그런데 인민병원에 약이 떨어져서 내과 홍명숙 과장과 장마당에 약을 구하러 나간 일이 있었어…그때 중국에 사는 조선족 보따리장사꾼한테 고가(高價)를 주고 구한 감기약과 페니실린이야. 잘 보관해 놓았다가 광성이 동생 아플 때 요긴하게 사용해. 남조선에서 생산되는 고급 약이라 효과가 뛰어나. 우리 집에는 인화 할머니가 수시로 편찮으셔서 약을 떨어뜨릴 수가 없고, 그 집에는 광성이 동생이 자주 아파서 걱정이야….』

 광성이어머니는 그렇지 않아도 둘째 아이가 찬바람만 불면 죽을 듯이 기침을 해대서 근심이 가득했다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과장 동지! 정말 고맙습네다. 마지막 떠나시는 날까지 우리 광호 약 걱정을 해주시는데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지요?』

 『광성이 오마니, 그런 말 말라. 우리 인영이가 어젯밤 집에 들어오지 않아 나야말로 떠나는 날까지 광성이 오마니 아버지한테 짐을 지워놓고 떠나게 되어 면목 없네. 귀찮고 힘들더라도 우리 인영이 잘 좀 찾아서 연락해 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네….』

 『맞습네다. 오랜만에 집에 온 인영이 학생을 홀로 떨어뜨려 놓고 떠나가야 하는 오마니 마음이 오죽하겠습네까? 저희가 꼭 인영이 학생을 찾아서 과장 동지 곁으로 보내 드릴 테니까 날래 내려가 보시라요. 할머니와 인화가 저 밑에서 기다리는 것 같습네다.』

 광성이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린 눈물을 훔치며 정남숙 과장을 배웅했다. 서너 걸음 물러 서 있던 백창도 과장도 다가와 다시 인사했다. 정남숙은 백창도 과장과 광성이어머니를 향해 손을 한번 흔들어 주고는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얼른 계단을 내려갔다.

 『넘어질라. 조심해서 내려오느라.』

 비틀거리며 어두운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는 며느리가 위험해 보였던지 손씨가 인화와 함께 아파트 층계참 밑에서 기다리다 주의를 주었다. 정남숙은 헐떡거리면서 아파트 층계참을 다 내려와서는 가족들과 함께 시동을 걸어놓고 있는 화물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화물자동차 운전수는 곽병룡 상좌 가족이 다 올라탔다는 말을 듣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잠시 후 화물자동차는 사회안전부 아파트단지를 빠져 나와 신풍서군을 향해 점차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