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씨는 속절없이 껄껄 웃고 있는 큰아들을 바라보다 곁에 놓여 있는 손수건을 움켜쥐었다. 군대 나간 손주가 저질러 놓은 화물자동차 전복사고로 인해 관직마저 다 내놓고 이 야밤에 산 설고 물 설은 곳으로 쫓겨가야 하는 우리 아범 심정을 그 누가 알아줄까? 이럴 때는 막내아들 병기라도 곁에 있으면 『네 큰형이 요사이 얼마나 속이 타겠는가. 너라도 형님 곁에 붙어 앉아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힘닿는 데까지 도와 주어라』 하고 애타는 어미의 마음이라도 전해주고 싶건만 그것도 나이 먹은 노인들 한테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은 자신도 노구를 큰아들 한테 의지한 채 짐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손씨는 코를 팽 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알았다. 아범도 어서 건너가서 짐이나 챙겨라. 옛날부터 공수래공수거라고, 이 늙은이한테 뭐 그래 필요한 게 있겠는가. 나한테는 그저 집안에 기둥이 되는 아범 내외와 귀여운 손주들만 있으면 그만이다….』

 손씨는 큰아들 내외에게 어서 건너가라고 말한 뒤, 돌아앉아 잠든 인화부터 깨웠다. 그때 곁에 서 있던 인숙이가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현관으로 나가면서 울상을 지었다.

 『엄마, 인영이는 어떻게 해? 밖에 나가 찾아볼 수도 없고….』

 『맞다, 내가 여태 그걸 못 생각했구나. 이 일을 어쩌나…려보, 우리 인영이, 인영이는 어케야 좋습네까?』

 정남숙은 살림방으로 들어가다 말고 눈시울을 붉히며 곽병룡 상좌의 팔을 흔들었다. 곽병룡 상좌도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 오면서 머리가 띵했다. 자정까지라도 인영이가 집에 들어오면 그나마 천만 다행인데 오늘밤 집에 들어오지 않고 친구들 집에서 자고 오기라도 한다면 인영이는 본의 아니게 부모형제와 생이별을 한 고아 신세가 될 판이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울화 때문에 곁에 있으면 귀싸대기라도 한 대 올려붙이고 싶건만 우선 아 새끼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까 오만 생각이 다 들면서 눈꺼풀만 파르르 떨려왔다. 이걸 어케야 좋은가?

 곽병룡 상좌는 담배를 한 대 붙여 물고 현관을 왔다갔다하면서 들끓는 듯한 자신의 머리 속부터 식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안해와 큰딸이 사색이 되어 방방 뛴다고 해서 자신마저 넋을 잃고 있으면 가족 전체의 삶이 낭패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바쁠수록 침착해져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안해와 인숙이를 데리고 살림방으로 들어갔다.

 『인영이 문제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니 좀더 기다려보면서 가재도구부터 챙가라우. 떠나갈 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아래층 백창도 과장한테라도 부탁해 놓고 떠날 테니까….』

 정남숙은 세대주의 말을 듣고 보니 인영이와 생이별을 하는 경우가 생겨도 다 키워놓은 자식 영영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은 사라졌다. 그녀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