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동익

그림 문형렬 양정사업소 가는 길(9)

개천이 흐르는 양지쪽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푸르름을 더해 가는 남새밭이 개천의 제방을 타고 길다랗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 남새밭이 끝나는 구릉지대에 구식 한옥 주택과 협동농장 창고/상점/동사무소/주소(파출소)/탁아소 등 민가 80여 호가 들어서있는 자연부락이 나타났다. 인구는 룡수동 동사무소 앞길을 지나 금천 읍내로 들어가는 큰 길 쪽으로 바삐 운전대를 돌렸다.

 촌락이 들어선 벌방지대의 거리 이편 저편에는 나지막한 1자형 단층 주택들이 이마를 맞대고 들어서 있었다. 정성스럽게 울바자를 매어둔 텃밭에는 아침 이슬을 머금은 남새들이 5월의 아침 햇살을 받으며 여린 새순을 내밀고 있었다.

 개들이 컹컹 짖어대는 큰길가에는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일찍 집을 나온 사민(私民)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직장에서 보내주는 화물차나 버스를 기다리느라 삼삼오오 무리지어 서 있었다. 그들은 인구와 사관장을 보고 정겨운 웃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전연지대에서 남조선 국방군과 대치하며 조국과 인민을 보위하느라 고생이 많겠다는 격려와 신뢰감을 보여주는 무언의 눈인사이리라.

 「모범기계공장」이라고 안내판을 써붙인 철로변 공장 정문 현판에는 「경애하는 김일성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 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고 쓴 정치구호가 유난히 눈길을 끌어당겼다.

 공화국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선전선동구호들도 며칠만에 보는 탓인지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곽인구 하사는 산더미 같은 진흙과 버럭(폐석)이 쌓인 공장 옆을 돌아, 또 다른 공장이 건설되고 있는 민가 도로를 따라 계속 달렸다. 대형 콘크리트 기둥을 세우기 위해 철골을 짜다 말고 팽개쳐 둔 인도 쪽으로 20여 명의 젊은 여성 노동자와 건장한 청년돌격대원들이 두 줄로 서서 바삐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대나무 껍질로 엮은 모자를 안전모처럼 덮어쓰고 있었다. 곽인구 하사는 잠시 차를 세우고 그들이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내어 주었다.

 『댓살모자는 뭣하려구 썼디…?』

 바깥을 내다보던 사관장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때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남자 일꾼들처럼 시커먼 작업복에다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질끈 동여매고 차 앞을 지나갔다. 물통이나 등지게를 지고 지나가는 여성 노동자도 보였다. 그런 모습들은 전연지대에서도 늘 보아오던 모습들이라 생경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운 얼굴들을 가리고 바삐 걸어가는 모습이 고향의 여동생들을 본 것처럼 사관장은 가슴이 아팠다.

 『일하다 위에서 돌 떨어지면 어캅네까? 머리 다치지 않으려면 모자는 써야지요.』

 곽인구 하사가 기어를 넣어 다시 차를 출발시키며 사관장의 말을 받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