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라, 동무들. 이거 하나씩 둘러메라우.』

 특수구루빠 조장이 불그스름하게 술기가 피어오른 얼굴로 수하 안전원들을 불렀다. 수령 동지가 하사한 술과 강냉이빵으로 시장기를 쫓은 안전원들이 우르르 달려와 이삿짐을 한 덩어리씩 어깨에 메고 곽병룡 상좌를 뒤따라 아파트단지 앞마당으로 내려가는 층계참 쪽으로 걸어갔다.

 『이봐요. 댁들은 뉘시오?』

 아파트 통로 3층 층계참을 막 내려갈 때였다. 통로 저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누군가가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백창도 과장이었다. 곽병룡 상좌는 자신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수사과장이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 서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른 체 하고 인사를 했다.

 『백동무구만. 날쎄. 밤늦은 시간에 와 여기 나와 있는가?』

 『위에서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한 번 나와 봤습네다. 위에 무슨 일 있습네까?』

 백창도 과장이 눈을 끔벅하며 물었다. 곽병룡 상좌는 백창도 과장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도 안전국 동무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기러니까 렴려 말게.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니까….』

 『아, 네…길타면 안심이구만요.』

 백창도 과장은 이삿짐도 한 덩어리 날라주지 못하고 죄송하다는 듯 거듭 곽병룡 상좌의 손을 힘주어 잡아 흔들며 아픈 마음을 내보였다. 처음 다가왔을 때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까 백창도 과장 뒤에 그의 안해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곽병룡 상좌는 백창도 과장이 그 사이 집으로 들어가 자기 안해마저 데리고 나와 자기 가족들을 전송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고맙다는 듯 백창도 과장의 안사람한테도 무언의 인사를 하고는 밑으로 내려갔다.

 백창도 과장 부부는 그들이 층계참을 다 내려가도 석상처럼 그 자리에 계속 말없이 서 있었다. 그러다 곽병룡 상좌의 가족들이 마지막 짐을 챙겨 층계참을 내려 올 때는 정남숙과 손씨 앞으로 다가가 나지막하게 심중에 있는 말을 전해 주었다.

 『정든 이웃 사람들한테는 제가 대신 소식 전해 드리갔습네다. 제발 떨어져 살더라도 얼굴이나 잊지 말고 살자구요. 기러다 보면 또 만날 날이야 있갔디요….』

 백창도 과장의 안해가 글썽하게 눈물을 매단 얼굴로 정남숙의 손을 잡았다. 정남숙은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이곳을 떠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같이 눈물을 보이며 『서로 떨어져 살더라도 마음만은 변치 말자』고 했다. 백창도 과장의 안해는 그 동안 아이 아플 때마다 병원으로 달려가 그렇게 신세도 많이 졌는데 이렇게 대접도 못하고 떠나보내게 되어 면목 없다면서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광성이오마니! 밤늦은 시간까지 일케 자지 않고 기다리다 마중 나와 준 것만 해도 평생 못 잊을 것 같네. 괜한 생각 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