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룡 상좌는 피우고 있던 담배꽁초를 비벼 끄며 정남숙을 바라보았다.

 『당적 처리규정이 기런데 우리 가족이라고 다른 방도가 있갔어?』

 『기럼 우리는 언제쯤 이곳을 떠나게 된다는 겁네까?』

 『오늘밤이 될지 내일 밤이 될지, 아니면 한 달 후가 될지, 기건 당만이 알뿐 아무도 모르는 기야. 기러니까니 다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으라우. 오마니한테는 내가 직접 말씀드릴 테니까…』

 정남숙은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세대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밤 만약 도 안전국에서 트럭을 몰고 달려와 짐을 꾸리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곽병룡 상좌는 우선 현지에 도착해 갈아입을 옷가지와 밥 끓여 먹을 부엌 세간이나 몇 가지 챙겨 들고 지정된 시간까지 트럭에 올라타야 한다고 대답했다. 정남숙은 그렇게 떠나갈 수는 없다는 듯 완강하게 도리질을 했다.

 『안돼요. 이 손때 묻은 가재도구들을 버리고 떠날 수는 없어요. 도 안전국에 연락해 단 며칠이라도 늦춰 달라고 사정이라도 한번 해 보시라요. 그래야 이삿짐이라도 좀 꾸릴 것 아닙네까?』

 『가족 전체의 장래와 정치적 생명이 기로에 놓여 있는 이 판국에 그깟 손때 묻은 가재도구들 몇 점이 길케 대단하오. 내래 아까도 말했디만 림자는 그 돼먹지 않은 물질적 욕심과 정신 자세부터 좀 고치라우. 당적 규정에 의해 여태 길케 처리해 왔는데 우리 가족만 챙길 것 다 챙겨 갈 수 있게 도 안전국에 연락해 조동(조직적인 이동) 시기를 늦춰 달라는 기야? 제발 조성된 정세와 현실을 똑바루 쳐다보며 지혜롭게 처신하라우….』

 곽병룡 상좌는 억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정남숙을 나무라다 어머니 손씨에게 바깥에서 일어난 가족들의 근황이나 알려주어야겠다면서 현관으로 나왔다. 그때 누군가가 아파트 나들문을 쾅쾅쾅 두들겨 댔다. 곽병룡 상좌는 친구를 만나러 나갔던 인영이가 이제사 귀가하는가 보다 하면서 문을 열었다. 그 순간 검은 전투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 3명이 곽병룡 상좌를 에워싸면서 집안으로 들어왔다. 곽병룡 상좌는 순간적으로 움찔 놀라면서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뉘시오, 동무들은?』

 『도 안전국 특수구루빠에서 나왔습네다. 세대주는 빨리 이 이주명령서를 접수하고 당이 결정 지시한 시간까지 가재도구를 챙겨 바깥에 대기하고 있는 화물자동차에 올라타시오. 우리는 세대주 이하 전 가족이 가재도구를 챙겨 화물자동차에 탑승할 때까지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네다….』

 곽병룡 상좌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침을 한번 꿀꺽 삼키며 도 안전국 동무들이 내민 이주명령서를 살펴보았다. 신풍서군 목재가구공장 안전 주재원 곽병룡은 명일 새벽 2시까지 낙원군 은혜읍 사회안전부 아파트단지를 떠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