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무가 수고스럽겠디만 내일 아침 당장 은혜읍 전역에다 수배명령을 내려 내 자식놈을 붙잡아 들이라구. 기런 다음 신풍서군으로 전화 한 번 넣어주게. 백동무도 알다시피 나는 지금 도 안전국 특수구루빠 소속 안전원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 몸이라 내왕이 자유롭지 못하네….』

 백창도 과장은 곽병룡 상좌의 다급한 심정과 처지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하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인영이 문제는 제가 내일부터 청소년 선도사업을 위해 검찰소 동무들과 특수구루빠를 조직하니까 그때 해결해 보갔습네다. 같이 가지 못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요. 모처럼 고향에 와서 친구들과 그 동안 못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통금시간을 넘길 수가 있으니까 말입네다. 길치만 이렇게 야밤에 떠나시면 앞으로 다시 만나 얼굴 보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섭섭해서 어캅네까?』

 『나도 가슴 아프네. 정든 이웃과 인사도 못 나누고 야반 도주하듯 이렇게 떠나는 것이 말일쎄. 길치만 어카나? 당의 명령인 걸. 기러나 죽지 않으면 앞으로 또 만날 날은 있을 거니까 백동무도 건강이나 조심하면서 오래오래 살게…살아 남아서 이곳저곳 나돌아다니다 보면 백동무와 다시 만나 만단 소회 풀면서 옛날 얘기하면서 살아 볼 날도 돌아오지 않겠는가…?』

 곽병룡 상좌는 목젖까지 치받는 석별의 아픔을 억지로 참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백창도 과장은 잠시 고개를 숙인 채 잠잠히 서 있다 허허허 웃었다.

 『기럼요. 오래 오래 살다 보면 또 만날 날이야 있갔디요. 내래 부장 동지 입장 난처해 질 것 같아서리 4층까지는 올라가디 않갔습네다. 노친네와 정남숙 과장 동지한테도 그 동안의 도움 고마웠다고 전해 주십시오. 아이 아프면 내 집같이 달려가 온갖 시름을 다 털어놓으면 한참씩 위로를 받고 왔다고 우리 아이 오마니도 가슴 아파 합네다.』

 『고맙네. 기럼 나, 올라가겠네.』

 곽병룡 상좌는 약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백창도 과장한테 보이지 않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4층으로 올라왔다. 그때 낙원군과 은혜읍의 밤하늘을 울리며 자정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이렌 소리가 끝나면 명일 아침 4시까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된다는 생각과 함께, 둘째 아들 인영이와도 생이별을 한 채 이 정든 은혜읍을 떠나야 된다는 생각이 가슴 한쪽을 짓눌러 왔다.

 이 놈이 대체 자정이 넘을 때까지 어디서 무얼 하기에 소식이 없을까….

 곽병룡 상좌는 둘째 아들 인영이를 이곳에 홀로 떨어뜨려 놓고 나머지 가족들과 함께 화물자동차를 올라타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아팠다. 그렇지만 자신도 모르게 닥쳐온 당의 명령은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집안으로 들어가 어머니 손씨에게 둘째 아들 인영이는 천상 백창도 과장에게 뒤를 부탁하고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뒤 안해가 묶어놓은 이삿짐을 밖으로 날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