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완희 동무가 자리에 앉자 정남숙은 그때서야 오늘 열린 생활총화는 평소에 열리는 생활총화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아직 당 생활총화가 끝나지 않아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필시 상급 당 조직으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고 당 세포들이 비서의 눈짓에 따라 조직적으로 자신에게 비판의 화살을 퍼붓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완강하게 버티면 부러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의 그 어떤 질책도 다 접수하겠다는 유연한 자세로 동료 당원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다 자신의 발언 차례가 오면 진정 뉘우치는 자세로 용서를 빌고, 또 자신의 생활과 전혀 다른 엉뚱한 비판 내용들은 여러 당원 동지들이 다시 한 번 검토해 달라고 제청하면서 호상비판을 부드럽게 매듭짓는 것이 미지의 후환을 줄여 나가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정남숙은 자신의 발언 차례가 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전의 흥분한 자세를 뉘우치면서 여러 당원 동지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는 생활총화가 끝나자마자 당 세포 비서 집을 빠져 나왔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그녀는 꽉 막혀 있는 듯한 가슴을 틔울 듯 밤하늘을 향해 우선 심호흡부터 서너 번 해댔다. 그리고는 구멍탄 더미가 있는 복도 구석 쪽으로 달려가 쪼그리고 앉아 헉헉 흐느껴 울었다.

 공화국에서 태어나 나이 마흔 여덟이 되도록 살아왔지만 오늘처럼 이웃으로부터 가혹한 비판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시댁 어른들로부터 손끝 하나 까딱 하지 않고 물려받은 집안의 사상적 토대와 세대주의 권력이 자신과 자기 가족의 삶을 그토록 윤택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해주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시댁 어른들로부터 물려받은 사상적 토대와 남편의 권력이 자신과 자기 가족의 삶을 떠받쳐 주고 있는 기반이고 생명의 물줄기 역할까지 해주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평범하게 자신에게 의사 자격증이 있어서 군 인민병원에서 와과과장으로 복무할 수 있었고, 자신이 날마다 직장에 나가 복무규정대로 열심히 일하니까 오늘의 삶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지적한 것처럼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유지시켜 주고 있는 생명의 물줄기가 어디에서 발원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냥 착하게만 살아가고 있는 한 중년 여성이라는 사실을 평소 자신을 따르고 있던 사람들한테서 가혹하게 비판을 당하고 보니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사회안전부 아파트단지에서 자신과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안전원 부인들이 왜 자기 가정의 사상적 토대와 세대주의 권력을 부러워하며, 그 권력 곁에서 권력이 내려주는 수혜적 특전을 받기 위해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데 자기 곁으로 다가와 아부하며 가족들의 비위까지 맞추기 위해 그토록 애걸복걸 매달렸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