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앞세워 신생국가 정체성 확보 노력
외교마찰로 경제'발목'… 친서방정책 펼쳐 점차 회생
   
▲ 스코페 구시가지에는 오랜 역사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오래된 거리와 전통 시장, 오스만투르크 시절의 건물들이 눈에 띈다.


6 마케도니아 오흐리드 / 스코페

남슬라브민족인 옛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의 한 자치주에서 지난 1991년 독립한 신생국가인 마케도니아는 이웃한 다른 형제국가와는 달리 피를 흘리지 않고 독립을 쟁취했다.

새롭게 독립한 국가들의 첫번째 목표는 바로 나라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이다. 마케도니아도 다른 독립국처럼 국가정체성 확보를 위해 거리에 많은 동상들을 건립하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전세계 누구나 알 수 있는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년~기원전 323년)이 있기 때문이다.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 도심 한가운데 마케도니아 광장이 있고 중심에는 거대한 동상이 우뚝 솟아있다. 바로 알렉산더 대왕이다.

신생 독립국가들은 몇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통치자들은 분열된 국론을 통일하고 정권안정을 위해 위대한 옛 선조를 다시 살려내 대대적으로 홍보하거나 아니면 자기자신을 신격화해 독재의 길을 걷는 일이다.
옛 소련연방에 독립한 중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도 이와 비슷하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은 16세기 위대한 정복자였던 아무르티무르 왕을 되살려 수도 중심에 거대한 동상을 건립했다. 자랑스런 조상을 앞세워 통치의 당위성을 얻으려는 것이다.
 

   
▲ 전통시장에는 야채와 과일을 파는 가게들이 몰려 있다. 관광객들의 주요 방문코스이기도 하다.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인 투르크메니스탄은 대통령 신격화의 길을 걸었다.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신격화를 경험한 후 대대적인 우상화작업을 벌여 몇년 전 죽기전까지 나라 전체에 수만개의 자신의 동상과 그림을 만들기도 했다.

두가지 방법 모두 독재를 위한 포석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마케도니아가 선택한 방법은 위대한 선조를 되살리는 일이었다. 바로 기원전 300년경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대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더 대왕을 전면에 내세웠다.
 

   
▲ 구시가지에 위치한 오스만투르크 시절의 대형 목욕탕.


수도인 스코페 중앙 광장에 거대한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을 건립했다. 그 옆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의 동상도 한창 건립중이다. 스코페 시민들도 마케도니아와 알렉산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하지만 득이 있으면 실도 있는법. 알렉산더 대왕을 국가 상징처럼 내세워 홍보효과를 극대화하던 마케도니아에 종주국을 자처하는 그리스가 격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사실 그리스 입장에서는 마케도니아 국명부터 불만이 크다. 알렉산더가 태어난 곳인 마케도니아는 사실 그리스 북부지역과 현 마케도니아지역을 포괄한다. 그리스가 이미 마케도니아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현재 마케도니아는 러시아 지방에서 이주해온 슬라브민족의 나라로 예전의 알렉산더 대왕 시절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알렉산더의 후예를 자처해오던 그리스 입장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마케도니아가 알렉산더 대왕 당시 사용했던 휘장까지 사용하자 갈등은 더욱 커졌다.

1994년에는 양국간 충돌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로 통하는 테살로니키 항구를 봉쇄하고 경제제재에 나섰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도 했으며 마케도니아 대통령 전용기의 그리스 착륙을 불허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섰다. 한창 발칸반도에서 내전이 벌어진 상황에서 전쟁 확산을 막기 위해 유엔과 나토의 중재에 나서 양국간 무력충돌은 모면했지만 지금까지 갈등은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 오흐리드 전경


전세계에 우리나라와 국교수립이 안된 나라가 3개국 정도 되는데 쿠바와 시리아, 그리고 바로 마케도니아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그리스와의 경제관계 때문이다. 그리스는 한국전쟁 참전 국가이면서 선박구매에도 세계적으로 큰 손이다.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마케도니아와 수교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유엔은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마케도니아에 북마케도니아라고 국명변경을 추천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대로 추진은 여의치 않다. 지금도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의 EU가입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스코페는 성직자의 모범을 보여준 테레사 수녀의 고향이기도 하다. 알바니아계 마케도니아인에서 태어난 테레사 수녀는 인도에서 오랬동안 가난한 이를 위한 성직활동을 벌였다. 테레사 수녀를 기념하기 위해 그녀가 태어난 장소에 기념교회와 박물관을 지어 그녀를 기념하고 있다. 그녀가 직접 쓴 편지와 각종 인증서류, 사진 등이 기념관에 보관돼 있다.

수도 스코페의 인구는 약 60만명 정도다. 70%는 슬라브민족이지만 30%는 알바니아인다. 이는 바로 종교적으로도 비슷한 양상이다. 마케도니아도 이웃 형제나라처럼 동방정교회를 믿지만 알바니아인들은 이슬람을 신봉한다.

스코페 신시가지와 구시가자를 가르는 터키식 돌다리를 경계로 이들의 거주지역도 함께 나누어지고 있다. 돌다리 한편으로는 새로운 도시가, 다른 한편에는 고대 그리스시대 이전부터 내려온 많은 유적들이 산재해있다. 로마시대와 비잔틴, 불가리아, 세르비아, 오스만투르크까지 외세의 지배는 천년을 이어왔다.

특히 오스만투르크의 400년 지배 영향으로 이슬람 사원과 터키식 목욕탕·여관 등이 거리 곳곳에 위치해 있다. 오스만투르크 시절 건립된 목욕탕은 현재 국립미술관으로 바뀌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후 발칸내전, 세계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와 불가리아, 세르비아에 영토를 빼앗기면서 지금은 전라남북도 크기에 인구 200만의 소국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강력한 친서방 정책의 영향으로 동유럽에서 미국의 최고 우방국으로 부상하면서 경제가 점차 살아나고 있다. 그리스에 있던 미군기지가 이곳 마케도니아로 이전하고 다국적 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하다.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지원이 확대되고 있지만 신생국가들의 공통된 문제인 부패가 발목을 잡고 있다. EU에서 지원한 막대한 자금을 거대한 우체국을 짓는데 탕진하기도 했다.


곳곳에 고대문명 숨결 …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마케도니아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남아있다. 바로 호수를 끼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오흐리드다. '마케도니아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이곳에는 300개가 넘는 정교회 건물이 있고 슬라브 민족 최초의 대학이 세워진 곳이다.
도시 전체가 세계역사문화유산와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곳은 마케도니아 사람들의 또 다른 자랑인 키릴문자를 만든 키릴·데토디형제와 이들의 제자 '성 클리멘트'의 본거지로 도시 곳곳에 이들의 동상이 눈에 띈다.
현재 키릴 형제의 주도권을 두고 불가리아와 자존심을 건 경쟁이 한창이다.
슬라브민족은 과거 언어는 있었지만 문자는 없어 라틴문자를 차용해 사용했다. 이들만의 문자를 만든 이가 바로 키릴형제다.
그 제자인 클리멘트는 키릴형제의 과업을 이어받아 키릴문자를 사실상 완성한 장본인이다. 오흐리드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9세기 세워진 슬리브 문화권의 최초의 대학도 이곳에 있다.
오흐리드는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리스 문명 이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리스 시대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가 이곳을 지배했다는 비문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후 로마와 비잔틴, 불가리아, 세르비아, 오스칸투르크 등 수많은 제국들의 각축장이기도 했다. 특히 그리스를 포함해 발칸반도 전역을 통치했던 14세기 세르비아 왕국시절에는 듀산왕이 이곳을 수도로 정하기도 했다.
지금은 아름다운 호수와 수많은 문화유적으로 인해 유럽인들이 즐겨찾은 유명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 인천일보-인하대 실크로드탐사취재팀
/남창섭기자 csnam@itimes.co.kr
/허우범 인하대 홍보팀장 appolo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