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600년 천년을 내다본다
   
▲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에 있는 율곡 이이(李耳)를 배향한 자운서원(紫雲書院). 1615년(광해군 7)에 지방 유림들이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해 위패를 모셨다. /사진제공=파주시


3. 종교의 성지, 경기도 (3)


율곡 이이·우계 성혼 등 성리학 대가 배출

개혁·혁신 추구하며 유학사상 큰줄기 이뤄

50개 향교·서원 '열린 문화의 장'으로 부활



▲유교는 종교인가?

이 논쟁은 아직 진행형이다. 한 때 유교의 종교화를 선언하고 개혁을 주장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유림 내부의 반발로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유교는 전통적으로 불교·도교와 더불어 삼교(三敎)로 일컬어졌다.

"유교는 만세의 성인을 모시고 있고, 시공을 초월하는 대경대법(大經大法)으로 인간의 궁극적 문제에 대해 해결점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개인과 사회의 이상 실현을 위해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신앙체계가 있고, 사례(四禮) 등 의식이 있으며, 이단배척의 위엄도 지니고 있다."(유학강의, 최근덕)

이 같은 종교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 유교의 가르침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는 종교성을 갖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러기에 유교는 근본이념인 도(道)를 실현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을 갈고 닦아서 결국은 하늘과 같은 사람이 되고자하는 교학이며, 유교문화라는 개념을 사용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유교란 학문과 종교, 전통문화 등으로 구분되어 사용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세 가지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유교문화'라는 개념을 사용한다."(한국유교의 현황과 성균관 석존, 진위수)
 

   
▲ 충렬서원에서 향사를 지내고 있는 모습



▲유교입국의 개혁의 땅, 경기도

한국의 유교는 크게 경북의 영남유교와 경기·충남의 기호유교로 나눈다고 한다. 특히 경기 파주는 기호유교의 창시자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배출한 곳으로, 한국 기호유교의 발상지다.

윤여빈 실학박물관 학예팀장은 "경기도는 대동세계를 구현하고, 지어지선(止於至善)의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유교의 이상이 숨어있는 땅이며, 유교입국을 위한 도학정치의 근거지"라고 했다.

이어 그는 "경기도는 한국유교의 중심처다. 곳곳에 명현명유가 꿈꾸었던 이상이 배어 있다. 그 기운이 근대화의 힘으로 왔으며, 다시 부흥돼야 한다"고 했다.

유교정신이 발현된 것이 향약이다. 질서를 따지고(禮俗相敎),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의 환과고독(患寡孤獨)을 배려하는 향약의 정신이 경기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의왕시에 있는 안향(安珦)의 종가와 사당인 안자묘, 용인에 있는 정몽주(鄭夢周) 사당인 충렬서원, 조광조의 사당인 심곡서원은 한국 유교의 뿌리가 경기도에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왜 경기도 유교는 개혁을 추구하고, 많은 명현명유들이 대동사회를 꿈꾸었다고 하는 걸까?

우선 '도를 따르는 것이 곧 천명을 따르는 것'이라는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했던 정암 조광조의 심곡서원이 용인에 있다. 또 조선 개국의 핵심 주역으로 각종 제도를 개혁한 삼봉 정도전의 문헌사가 평택에 있다.

기호학파의 대표 학자가 파주 자운서원의 율곡 이이다. 그는 한국 유교사상사의 절정을 이룬 16세기 조광조와 이언적, 서경덕, 이황 등의 학자 등이 배출되던 시기에 활동했다.

조선 후기 한계에 부딪힌 성리학을 극복한 실학의 대가 성호 이익이 안산에서 학문을 연구했으며, 다산 정약용이 남양주 마재에서 실학을 집대성했다.

성호의 학문은 퇴계학에 연원을 두면서 특히 근기 남인학자로서의 미수 허묵, 백호 윤휴의 학풍을 계승했으며, 그 학풍을 경기도 사람인 안정복·권철신·정약용이 이어갔다.

광주 남한산성 현절사에는 병자호란 때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순절한 삼학사인 오달제, 윤집, 홍익한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오산시 궐동 궐리사에는 유가사상의 창시조인 공자의 사당이 있다. 공자의 유상과 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제향을 올리며 교육 교화사업을 일상 업무로 하고 있다. 공자의 64세손 공서린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정조의 칙명으로 창건됐다.

남양주 지금동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아름다웠던 석실서원은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지만 노론정치의 산실이었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를 지키다 성이 함락하자 자결한 김상용과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항복하기를 거부했던 척화파 인물 김상헌의 사당이었다.

이후 서원으로 확대되면서 걸출한 학자들을 배출하고, 진경문화와 북학사상의 산실로 기능했다.

양평 서종면 노산사는 조선말기 성리학자인 화서 이항로를 모신 사당이다. 주리철학(主理哲學)의 3대가 중 한 사람인 그의 사상은 조선조 말기의 민족사상인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사상적 기초가 되고 민족운동의 실천적 지도이념으로 승화됐다.

포천의 채산사는 조선말기 애국지사 면암 최익현의 사당이다. 그의 우국애민의 정신과 위정척사사상은 한말의 항일의병운동과 일제강점기의 민족운동·독립운동의 지도이념으로 계승됐다.

이같은 기호유교의 정신은 개혁, 혁신, 실천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 정신은 오늘날 국내에서 가장 선진화된 경기산업의 정신적 원동력이라고 한다.

이처럼 경기도는 명분론자에서부터 실리론자까지 도처에 유교정신이 흐르는 '정신의 수도'다.

 

   
▲ 수원향교 정문. 뒤로 보이는 은행나무는 하늘을 향해 가지를 쭉쭉 뻗은 형상 때문에 기상 높은 선비를 기르는 최고의 상징이라고 한다.


▲경기도의 향교와 서원

향교는 전통시대의 지방교육을 담당한 곳이다. 서원 역시 유교 이념에 입각한 지방교육기관이다. 향교가 국립교육기관이라면 서원은 사립교육기관이다. 현재 도내에 향교 25개와 서원 25개가 있다.

서원은 우리나라 유교문화 전승의 중심지고 숱한 역사적 질곡을 거치면서도 옛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서원(書院)은 본래 향리의 미풍양속을 순화하는 교화기능과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능을 가진 곳이었다. 조선조 기호사림의 강학(講學) 공간이기도 했다.

향교는 구한 말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그 기능이 쇠락했고, 흥선대원군의 서원개혁으로 서원도 그 기능을 잃었다.

그러나 최근 문화·예술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열린문화의 장으로 부활을 꿈꾸고 있다.


/글 이동화·사진 김철빈 기자 itimes21@itimes.co.kr




인터뷰 / 박성진 한국서원연합회 상임이사


"경기유학 전당 건립·인문정신 회복해야"


-경기 유교의 특징은.

"첫째, 자운서원(栗谷)과 파산(牛溪), 대로(尤庵)를 중심으로 충청 호남 황해도로 확대되어간 기호학의 중심지라는 특징이 있다.

둘째, 개혁정신의 진원이라는 특징으로 조선건국과 국가개혁의 상징인 삼봉(三峰)과 훈구세력에 대항한 사림정치의 발로인 정암 조광조가 대표적이다.

셋째, 조중봉과 권율, 이항로와 서희로 대표되는 구국의 선봉장들과 이항로, 최익현으로 대표되는 구국과 위정척사 운동의 구심점이었다. 이 같은 세 가지가 경기 유교의 정체성이라고 볼 수가 있다.

영남은 주로 사승관계에 따른 계보 중심의 서원이 주종이라면 경기 서원의 정체성은 기호학적 성리관의 현실주의적 특징이 중심 되면서 실학으로, 또는 실천 철학으로 연계되어가는 하나의 큰 흐름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기 서원의 정체성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도민들의 자긍심으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현재의 유교는 조선시대보다 그 위상과 역할이 침체돼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제도적으로 보면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이지만 유교는 그 정신적 맥락을 중시한다. 우리들 핏속에 남아있는 역동적 개혁과 사회발전,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 동방의 유태인이라 비유하는 것처럼 재빠른 산업화와 마케팅은 결국 경기 유교가 지향했던 3가지 정신의 현대적 표현이며 지금도 역동적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지금 현재의 정치에서도 부모를 보고 자식을 판단하거나, 청빈해야하는 계층이 타락했을 때 얼마나 질책이 심한가? 이것이 유교정신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유교가 주창하던 정신적 기반 즉, 인문학을 바탕으로 휴머니즘(仁)과 사회정의(義)와 국내외의 평화적 질서구축(禮), 운영주체인 인간의 청빈과 검소, 나아가 환경생태 보호(智)를 바탕으로 세계사에 기여(信)할 때 인류평화의 주체(大同和平)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수도권에 2000만이 살고 있다. 앞으로 경기유교의 역할은.

"영남유학의 성리학적 정체성 확립에는 국가적으로 발전시켜나가고 있지만 경기유학의 요체는 기호학의 정체성인데 율곡은 강원도로, 삼봉은 경상도로, 우암은 호남으로 모두 빼앗기고 있다.

근본과 시종이 바로서지 못하면 경기유학과 경기유림은 작아보이게 된다. 결국 그것이 경기도의 몫이다. 산업화도 중요하지만 성현들이 그토록 부르짖던 인성(人性)의 정립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근래에 성범죄가 얼마나 많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가?"


-덧붙이고 싶은 말씀은.

"경기는 고려와 조선건국정신의 요람이자 시발점이다. 대한민국 건국정신의 실질적 수도가 경기인 만큼 경기도와 인천 등 경기정신의 회복이 600년에 제대로 건립되어야겠다.

흔히들 도로 1km 건설비용이면 삶의 지표가 될 훌륭한 경기유학의 전당을 건립해 대사회적으로 대대적인 인문정신 회복운동을 펼쳐 갈 수 있다고 한다. 근본이 서지않고 그 끝이 온전한 경우는 역사에 없다고 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옛말이 아니다."

/이동화기자 itimes21@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