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사업소 가는 길(8)글 서동익

그림 문형렬 금천 읍내로 들어가는 군사도로가 보였다. 그 군사도로를 따라 좀더 달리자 벌방지대(평야지대)가 전개되었다.

너무나 아득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지역은 례성강(예성강)으로 모이는 지류들이 넓은 들판 사이로 흐르는 평야지대여서 옛날부터 농업이 발달했다는 소리를 사관장으로부터 여러 차례 들은 적이 있었다.

정동벌·마산벌·친선벌·팔천내벌·명성벌·백양벌 등지에서 수확되는 알곡들은 군량미로도 많이 수매되었다. 알곡이 대거 수확되는 가을철에는 대개 사단 후방부(식량이나 피복류 등을 공급하는 부서) 창고에서 입쌀을 수령했다.

 그러나 춘궁기가 다가오는 봄철에는 사단 후방부에서 할당해 준 지역의 양정사업소(정미소)에 직접 찾아가서 양곡을 수령해 올 때가 많았다. 그런 관계로 곽인구 하사는 금천 읍내의 지리도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그는 봉화산 줄기에서 뻗어 나온 밋밋한 야산 자락을 돌아 나왔다. 뜨락또르(트랙터)가 무논을 쓰레질하고 있는 향합리 들판지대가 나왔다. 무논들 옆으로는 제방처럼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들판길이 전개되었다. 곽인구 하사는 전신주가 드문드문 서 있는 들판 길을 따라 또 달렸다. 무논 여기저기에서 개골개골 울어대는 엉머구리 울음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이른 아침인데도 보온용 비닐을 걷어내고 못자리를 손질하고 있던 협동농장 여성 농장원(협동농장에 소속된 여성 일꾼)들이 지나가는 군용 화물차를 쳐다보며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이 보였다. 곽인구 하사는 전연지대에서 나온 군용 화물차를 향해 반가움을 보여주는 여성 농장원들에게 고마움의 정표로 경음기를 두 번 울려 주었다.

 사관장도 여성 농장원들의 그런 모습이 정겨운 모양이었다. 그는 상의 윗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던져 주었다. 한 남성 농장원이 들판 길로 달려나와 담뱃갑을 주웠다. 그리고는 고맙다고 소리치며 쓰고 있던 레닌모를 벗어 흔들어 주었다. 『고향에도 지금쯤 무척 바쁘겠디?』 사관장이 멀어지는 농장원들을 바라보며 격의 없이 물었다. 인구는 사관장의 그런 말들이 지연(地緣)에 대한 강한 유대감을 느끼게 했다.

 그는 흥이 난 듯 크게 대답했다. 『네. 우리 고향에도 지금쯤 모내기전투 준비가 한창일 것입네다. 학생들은 농촌지원 나가느라 바쁘고 말입네다….』 『만풍년이 들어야 제대해도 식량 걱정이 없을 텐데….』 사관장은 식량 사정이 날로 어려워지는 사민(私民)들의 생활을 걱정하며 담배를 붙여 물었다. 인구가 그의 옆모습을 보며 물었다

  『금년 가을에 제대하십네까?』 『기래. 이제 한 서너 달 남았어.』 곽인구 하사는 례성강의 지류가 흐르고 있는 다리 목에서 룡수동 쪽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어젯밤 봄비에 물이 많이 불어난 것 같았다. 겨우내 얼어붙어 있었던 개천에서 촬촬촬 물 흘러가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