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단 여정'연재 … 9개국 도시 돌며'미래'모색
   
▲ 마케도니아 오흐리드 호수 언덕위에 위치한 성판텔레이몬 수도원의 모습. 이곳은 지금까지도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이번 연재는 발칸반도 실크로드의 중요지역들을 차례로 살펴본다. 불가리아의 소피아를 시작으로 루마니아의 부카레스트,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 등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채, 오늘도 활발한 삶과 경제활동을 펼치는 도시들을 찾아갈 것이다. 저마다 실크로드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간직한 이들 도시들은 오늘도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소피아는 지혜의 도시다. 유럽에서도 가장 오래 된 도시의 하나인 소피아는 고대로부터 교통의 요지로 발전하였고, 14세기경에는 발칸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자연히 행정과 사법의 중심지로 변모하고 소피아를 지키기 위한 지혜가 모아졌다. 오늘날도 이스탄불, 베오그라드를 연결하며 국제적인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 한층 더 지혜를 발산하고 있는 소피아의 모습을 살펴본다.

부카레스트

   
▲ 루마니아의 유명한 독재자 차우세스코가 세운 피플하우스.

는 독재정권의 종말을 낱낱이 보여주는 도시다. 대통령 차우셰스쿠는 1967년 국가평의회 의장이 된 이후로 23년간 독재 권력을 휘둘렀다. 1989년 12월, 반정부시위에 무자비한 유혈진압을 강행하다 체포되어 처형되었는데, 혁명광장 주변은 지금도 탄흔이 남아 격렬했던 그날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인류문명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독재정권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그 자리에는 민주주의가 발전한다. 이 또한 인류문명의 전도사인 실크로드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이자 과제임도 알아볼 것이다.

베오그라드는 사바강과 도나우강이 합류하는 천혜의 도시다. 이런 까닭에 이천년 동안 40번이나 파괴되어도 다시 건설된 역사적인 도시다. 그래서 도시는 피로한 듯 하지만 전통의 뿌리가 면면히 이어져 중후한 품격이 느껴지는 도시다. 사회주의의 때 묻은 옷을 벗고 자유로운 연애와 낭만적인 도시로 거듭나는 하얀 도시 베오그라드. 세르비아인 특유의 당당한 자존심으로 발칸의 심장이 된 베오그라드의 새로운 변모를 추적할 것이다.
 

   
▲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평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산 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박물관에 아이들을 데리고 이 곳을 찾은 부모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사라예보는 동서양의 다양한 종교가 교차하는 도시다. 또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내외가 라틴다리에서 암살당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도시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내전의 아픔을 겪은 사라예보는 도시 곳곳에 아물지 않은 상처와 슬픔이 배어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염원인 화합과 평화를 노래하는 곳이기도 하다. 자신의 상처와 슬픔을 교훈 삼아 인류의 평화를 일깨우는 현장을 찾아보고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우리들의 노력과 책임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질 것이다. 이밖에도 아드리아 해를 따라 빛나는 역사를 창조한 알바니아 티라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몬테네그로 코토르, 슬로베니아 블레드 등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취재단은 발칸반도 실크로드를 탐사하며 새로운 성찰을 하였다. 그리고 실크로드가 인류에게 던지는 '소통하고, 포용하고,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들었다. 인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실크로드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리하여 수천 년이 지난 오늘도 인류는 실크로드에서 새로운 삶을 찾고 새로운 꿈을 이룩한다. 하지만 매너리즘에 빠졌음인가. 인류는 실크로드를 단지 오래 전부터 걸어온 길로만 생각한다.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만 여긴다. 실크로드가 베풀어준 거룩한 은혜를 모른다. 아니, 실크로드가 인류에게 새로운 역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을 망각한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생각도 없으니어찌 기억하겠는가. 눈앞의 사욕에 급급한 채 다툼만이 있을 뿐이다.
 

   
▲ 보스니아 모스타르에 있는 스타리모스트 다리. 유고내전 당시 파괴됐다가 유엔 등의 도움으로 평화의 상징으로 재건됐다.


발칸반도의 평화는 절룩거린다. 총탄의 흔적을 지우고, 무너진 다리를 다시 세워 세계인들이 염원하는 화합의 다리로 변모했지만 아직도 불안하다. 그만큼 발칸반도는 인간들의 욕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실크로드로 길을 열었으되 욕심으로 인해 상처만 깊어진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탐사단은 희망의 불씨를 보았다. 전쟁의 상흔을 딛고 서로의 영역에서 삶을 찾는 사람들, 유로존 가입과 발전을 위한 저마다의 활발한 경제활동. 무엇보다 국가간 장벽을 허무는 소통과 자유로운 왕래는 고대로부터 이어졌던 실크로드의 루트를 찾아내는 것처럼 기쁜 일이었다. 또한 고대 실크로드의 대상들이 묵었던 숙소들의 새로운 변신은 21세기 신 실크로드의 허브가 발칸반도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지금 소통과 포용과 사랑이 필요한 곳이 바로 발칸반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류문명의 완성인 대동 세계 구현을 위한 허브가 되어주길 바라고 있다. 인류는 언제나 간난(艱難)의 신고(辛苦)를 이겨낼 때 더욱 커다란 발전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실크로드탐사단도 간난과 신고를 이겨내며 독자들의 염원에 부응할 것이다.


발칸반도는 어떤 곳?

발칸반도는 한반도면적의 2배가 넘는 50만5000㎢다. 북쪽은 도나우 강과 드라바 강을 통해 대륙과 연결되어 있고, 남쪽은 에게 해와 이오니아 해가 둘러싸고 있다. 자연환경과 민족적 전통 등에서 남북은 매우 이질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 발칸이라는 명칭은 북동부에 있는 산맥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발칸반도의 기후는 대체로 건조하고 겨울에는 시베리아의 찬바람이 불어온다. 이러한 기후조건은 역사적으로도 후진성을 면치 못해 낡은 생활양식, 고립된 민족전통을 남기는 원인이 되었다. 선사시대부터 수많은 민족이 이동해 왔으며 6세기경에는 슬라브인이 상주하였는데, 이후 슬라브인은 발칸반도의 북부의 주인공이 되었다.

발칸 반도는 그리스 북부의 마케도니아 출신 알렉산드로스 대왕 때 반도의 대부분이 그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 이후에는 로마, 비잔틴, 투르크, 베네치아 등 외부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근대에도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 이탈리아 등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러시아가 터키를 물리치고 장악한 19세기부터 몇 개의 민족국가가 형성되었으나, 민족 간 대립과 열강의 간섭으로 '유럽의 화약고'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몇 개의 독립국이 탄생하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대부분이 독일의 침략을 받았다. 이후, 그리스를 제외한 전 지역이 구소련의 영향 아래 인민공화국으로 탄생하였다.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민족 간 갈등표출이 되지 않았으나,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국제적인 관심지역이 되었다.

발칸반도는 각 국가 간 다수 민족의 소수 민족에 대한 적대행위가 심각한 국제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유럽의 낙후지역에 속하며 농업의 비중이 매우 크다. 이런 까닭에 이 지역의 전체 무역구조는 농산물과 농산물 가공품, 광산물이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후진국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슬라브계 언어의 사용으로 국가간 언어소통은 원만함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인 차이, 정치적인 대립 등은 발칸의 정치적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또한 국경을 잇는 도로의 건설로 다소 교역루트가 해소되었다고는 하지만, 고립적인 경향이 강하여 이 또한 발칸반도의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 인천일보-인하대 실크로드탐사취재팀
/남창섭기자 csnam@itimes.co.kr
/허우범 인하대 홍보팀장 appolo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