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인천 완전범죄는 없다 - 6. 석남동 다방 여주인 살해사건
   
▲ '서구 석남동 다방 여주인 살해사건'은 범인 송씨가 내연녀를 살해하고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다방에 불을 지른 엽기적인 사건이다. 사건이 일어난 다방 외관과 화재로 몽땅 타버린 내부. /사진제공=서부경찰서


"아, 상가 하나 사서 임대료나 받으면서 편하게 살고 싶다."

인천 서구 석남동에서 다방을 운영하던 서모(51·여)씨는 늘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매일 같이 하루벌이가 시원치 않아 답답했던 그의 심정이기도 했다.

그런 서씨가 자신의 전부와도 같았던 다방과 함께 불에 타 숨진 채 발견됐다. 누군가 서씨를 살해한 것이다. 더구나 범인은 범행 흔적을 지우기 위해 현장에 불을 지르는 등 잔인무도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 때문에 경찰은 수사에 애를 먹기도 했다.

당시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든 '석남동 다방 여주인 살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본다.

 

   
 


▲사건의 시작

"다방에서 불이 나고 있어요."

지난 2009년 2월19일 새벽 인천 서구 석남동 한 다방 안에서 화재 신고로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불을 끄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어? 여기 시체가 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소방관이 불을 끄다 중년 여성의 시체를 발견하고 놀라 넘어졌다.
단순 화재가 살인 사건으로 커진 것이다. 석남동 다방 여주인 살해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곧바로 서부경찰서 강력팀과 과학수사대가 현장에 나왔다. 화재가 시작된 방안은 몽땅 타버렸다. 시체도 여기서 발견됐다.

서씨의 시신은 엽기적인 모습이었다. 얼굴은 투명한 박스 포장용 테이프로 둘둘 감겨 있었고, 목은 휴대전화 충전기로 칭칭 감겨 있었다. 양손은 몸 뒤로 가 있는 상태서 노끈처럼 보이는 것으로, 양발은 노끈과 스카프 따위로 묶여 있었다. 서씨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사들은 서씨의 몸에 있던 범행 도구들을 증거물로 수집했다. 서씨의 입술, 가슴 등 부위에서 지문과 유전자(DNA) 채취 작업도 함께 했다.
범인의 흔적이 서씨의 몸에 남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형사들은 화재로 실내 온도가 상승하면서 지문과 DNA를 훼손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범행 흔적이 없어지는 것은 일부러 불을 지른 범인의 노림수이기도 했다.

 

   
 


▲본격적인 수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시신을 부검한 결과 서씨는 경부 압박 질식사가 사망 원인이었다. 안면 부위와 가슴 주변에는 타박상이 있었다. 누군가 서씨를 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이다.

"지금부터 이번 살인 사건에 용의자가 될 만한 사람들은 죄다 찾아봐!"

당시 현장에서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 형사들은 바로 정공법을 택했다.

수사의 가장 기본은 탐문 수사이다.
형사들은 사건 당일 전 서씨의 다방을 찾은 사람들과 서씨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에 남아 있던 전화번호의 인물들, 서씨와 원한 관계가 있거나 채권·채무 관계로 얽힌 주변 사람들, 서구지역 다방업계에서 폭력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손님들 등 200여 명을 색출해냈다.

다음날까지 수많은 형사들이 총동원돼 이들과 1대1 면담을 하고 동의를 받아 입안의 DNA를 채취했다.
하지만 유력한 용의자는 찾지 못했고, 형사들은 막막해졌다.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준 실오리 같은 제보

"그 다방 주인, 돈만 많이 벌어 놓고 써보지도 못하고 그냥 가버렸네 … 쯧쯧."

서씨 주변에선 서씨는 돈이 많은 것으로 소문나 있었다. 더구나 서씨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다방에서 성매매를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서씨의 주변 인물은 생각보다 많았다.

경찰의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20일 형사팀에 범인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제보자 A씨는 서씨와 가까운 사이였다.
A씨는 서씨와 평소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다는 박모 여성에 대해 언급했다.

얼마 전에는 서씨와 박씨가 송모(51)씨를 사이에 두고 싸운 사실도 털어놨다. 송씨는 서씨와 박씨를 동시에 사귀고 있었던 이른바 바람둥이였던 것이다.

곧바로 형사들은 박씨와 송씨를 찾았다. 박씨는 서씨의 죽음에 대해 매우 가슴 아파했지만 송씨는 태연한 모습이었다.

형사들이 송씨를 상대로 DNA 채취를 하려 하자 송씨는 이를 따져 묻기를 반복하며 거부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송씨는 "서씨와 가까운 주변 인물인데 DNA 채취를 피하면 용의자로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는 형사의 말에 결국 채취에 응했다.

송씨는 또 "그 날 박씨와 같이 있었다"며 알리바이를 주장했다. 송씨는 다음날 경찰서로 오기로 하고 돌아갔다.


▲결국 밝혀진 용의자

하지만 송씨는 경찰서에 오지 않았다.

송씨는 형사와의 통화에서 "내가 범인도 아니고 나도 일이 있는 사람인데 매번 어떻게 갑니까?", "입안에 DNA 채취한 걸로 결과 나온다면서요?", "제가 확실한 범인이면 그냥 잡으러 오세요"라며 도리어 형사들에게 항의했다.

형사들은 송씨가 이번 사건의 용의자일 것 같은 '촉'이 발동됐다.
서씨와 애인 사이인데다 무언가를 숨기는 듯하고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송씨는 B 모텔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송씨는 사건 발생 날인 18일 저녁부터 박씨와 모텔에 있었고, 박씨는 19일 0시쯤 집으로 돌아갔다고 형사들에게 진술했다.
이후 방에서 나오지 않고 19일 아침 7시가 돼서야 밖을 나갔다고 주장했다.

송씨의 말대로라면 송씨는 범인이 아니다.
형사들은 송씨의 진술을 확인하기 위해 B 모텔과 주변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했다. 송씨는 이미 B 모텔에서 방을 뺀 뒤였다.

송씨가 옮겨간 곳은 C 모텔이었고, 형사들은 C 모텔 주인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송씨가 19일 새벽 4시쯤 이곳을 찾아와 숙박을 했어요. 그리고 친구 만나러 바로 나간다더니 이날 오전 8시쯤 다시 들어왔다가 나가서는 아직까지 들어오지 않았어요."

B 모텔 주인 역시 박씨가 나간 뒤 잠이 들어 아침 7시에 송씨가 나가는 것만 봤다고 했다. 송씨가 그동안 거짓말한 것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송씨가 계획적으로 B 모텔 주인이 잠 든 사이 서씨의 다방에 가는 등 치밀하게 알리바이를 조작한 흔적이 드러났다.

수사의 칼끝이 송씨를 겨냥한 순간 낌새를 눈치 챈 그는 잠적해버렸다.


▲이름 부르니 고개 '휙' … 범인 검거

송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난항을 겪던 수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모든 형사들이 송씨 검거에 매달렸다.

"누나 나 서울역인데 돈 좀 빌려주면 안돼?"

평소 송씨를 챙겨줬던 송씨의 큰 누나는 23일 송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누나는 송씨가 이번에도 거짓말로 돈을 타내려는 것으로 여기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를 확인한 형사들은 송씨에게 다시 연락 오기만을 기다리며 누나가 장사를 하는 서울 종묘공원 인근에서 잠복했다.

다음달인 3월2일 누나는 형사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동생에게 전화가 와 돈을 빌려주기로 하고 다음날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누나 나 사실은 사람을 죽였어. 도망가게 돈 좀 빌려줘. 마지막으로 한번만 도와줘."

송씨는 누나에게 범행 사실도 털어놨다.

형사들은 대거 종묘공원과 인근 공중전화 부스와 누나의 가게 주변에 투입됐다.

오후 7시30분쯤 종묘공원을 살피던 한 형사가 수상한 남성을 보고 뒤에서 송씨의 이름을 불렀다.
남성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송씨였던 것이다. 결국 송씨는 사건 발생 16일에 붙잡혔다.


▲드러난 그날의 진실

송씨는 2008년 3월 서씨를 알게 돼 그 무렵부터 내연관계를 맺어왔다.

송씨는 서씨로부터 "남편과 사실상 이혼상태이니 이혼하고 같이 살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고, 같은해 11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2800만원을 빌려주기도 하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12월부터는 서씨가 빌려간 돈을 갚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들과 성관계를 갖는 것으로 의심해 자주 다투게 됐다.

그러던 중 2009년 2월18일 오후 11시쯤 송씨는 서씨가 다방에서 다른 손님과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의심해 심하게 다투다가 "빌려간 돈이나 빨리 갚으라"고 요구했다.

이때 서씨가 "이제까지 성관계를 한 대가로 빌린 돈을 다 갚고도 남는다"고 말하며 다방 내실로 들어가자 화가 난 송씨는 뒤따라가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렸다.

이에 서씨가 경찰에 신고하려하자 송씨는 그곳에 있던 노끈으로 양팔을 뒤로 묶었다. 계속해서 서씨가 소리를 지르자 테이프 등으로 다리를 묶고, 입과 코를 막은 다음 휴대전화 충전기 전선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송씨는 또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사체 위에 이불을 덮어 다방을 불태웠다.

인천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함상훈)는 이 같은 혐의(살인)로 기소된 송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 박범준·최성원기자 parkbj2@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