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전통 지키는 터전 … 인재배출의 산실
   
▲ 조선시대 청백리 오리 이원익과 직계 후손들의 유물 등을 보관하고 있는 충현박물관의 오리 영우(梧里影宇, 1694년(숙종20)에 건립된 이원익의 사당) /사진제공=광명시


2.600년의 역사 '문화원형'을 찾아서 (인문·자연·역사)-2. 600년 '경기 종가'의 부활

유네스코는 2010년 8월1일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고 밝혔다. 이들 전통마을이 높이 평가받은 것은 '종가(宗家)'를 중심으로 면면이 이어져 온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였다.

그럼 종가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온 큰집'이다. 누구나 종가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윤여빈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실 연구원은 "사당에서 영구히 제사를 받는 선조가 있는데 이를 불천위(不遷位)라고 한다. 불천위가 모셔진 사당을 부조묘(不示+兆廟, 별묘)라고 하며 그 후손이 이어졌을 때 그것이 종손이고 종가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조정으로부터 시호를 받거나 나라에서 예식을 갖추어 치르는 장례인 예장(禮葬)을 허락한 사람만이 불천위가 되는데, 국가에서 지정한 국(國)불천위와 지역에서 추천한 향(鄕)불천위, 문중에서 반드는 사(私)불천위가 있으며 경기도 불천위는 대부분 국불천위로 200위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즉 종가란 조선시대 유교의 종법제도에 의해 생긴 것으로 학문이나 정치적으로 국가와 지역사회에 이바지한 인물의 직계후손 집안으로 불천위 사당을 모시고 선조의 가르침을 받들어 실천하며 생활해 온 큰 집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종가는 한 가문의 명예와 전통을 지켜가는 중심 터전이요, 지역사회 공론형성의 핵심 거점이자,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는 지성의 산실이기도 했다.

특히 주거·음식·의복·의례·교육 등 소중한 문화자산을 가장 잘 보전하고 있는 전통의 보고라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한다.

600년 세월 속에서 한결같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종가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종가는 살아있는 자손의 생활자세와 몸은 죽었으나 영원히 살아있는 조상신의 성스러운 세계로 이루어지는 특별한 문화적 공간이다. 이 점이 종가의 특별한 이유다."<김광억 서울대 교수>

그러나 종가 문화는 변하지 않으면서도 시대에 맞게 변하고 있다. 거센 개발바람에도 꿋꿋이 지켜온 종가가 있는가 하면, 400년 전 조상과 컴퓨터가 한자리에 있는 아파트 종가도 있다. 바로 덕수 이씨 율곡 이이의 사당이 고양시의 한 아파트에 있다.

율곡 선생의 15대 종손 이천용(60)씨는 "위패만 모시고 1947년 황해도 종갓집에서 남으로 넘어왔기에 생활이 어렵다보니 아파트에 사당을 지어 놓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 종갓집의 정갈함을 느낄 수 있는 장독대.


현대에 들어서 봉제사 접빈객의 안살림을 맡아오던 종갓집 종부의 역할도 새롭게 정립돼 가고 있다.

광명시에서 사는 오리 이원익 선생의 13대 종부인 함금자(72) 관장은 "전통적인 종부의 삶은 우리 세대가 마지막일 것이다. 다음 세대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며 "정신은 살리되 형식은 현대에 맞게 변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히 영남지방과는 달리 경기도는 전쟁과 도시화 등으로 집성촌과 종가가 많이 파괴됐다.

그 가운데 안성시 양서면 덕봉리에는 해주 오씨 정무공파 7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덕봉리 선비마을 일을 맡아보고 있는 오세필 위원장은 "마을에는 덕봉서원과 오정방 고택, 경앙사 등 전통가옥과 연못, 정자, 공동우물터 등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한 곳이다"며 "또 현재까지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산신제, 석전 등의 제례를 거르지 않고 지내고 있으며, 국말이 국밥 등의 전통음식도 잘 보존되어 있다"고 했다.

현재 도내 대표적 불천위 종가는 ▲의왕시 문성공 안향(安珦, 1234~1306) ▲파주시 익성공 황희(黃喜, 1363∼1452) ▲평택시 문충공 신숙주(申叔舟, 1417~1475) ▲시흥시 문량공 강희맹(姜希孟, 1424~1483) ▲양평군 문익공 이덕형(李德馨, 1561~1613) ▲고양시 문성공 이이(李珥, 1536∼1584) ▲용인시 추탄공 오윤겸(吳允謙, 1559∼1636) ▲남양주시 문정공 김육(金堉, 1580~1658) 선생 등이 있다.

/글 이동화·사진 김철빈기자 itimes21@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