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1주전 보험수익자 변경 … 시신화장 수사난
용의자 사기·절도 등 범죄 전력 다수 재판 이목
   
▲ 한 공중파 방송에서 당시 낙지 질식사 사건의 사고 현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사진제공=SBS 궁금한 이야기 Y


5.낙지 질식사 사건

지난 2010년 5월5일 밤 인천의 한 대형병원 중환자실에서 젊은 여성이 숨을 거뒀다.

고 윤혜원(당시 21)씨. 학원을 다니며 간호사가 되기를 꿈꿨던 윤씨는 꽃다운 나이에 채 피지도 못하고 가족과 꿈을 남기고 떠나고 말았다. 왜 이렇게 일찍 떠나야 했을까. 윤씨의 사망 원인은 '질식사'. 무언가 윤씨의 숨을 막히게 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그런데 윤씨가 사고를 당한 현장 모텔 방에는 유일하게 남자친구 A(30)씨가 있었다. 방바닥에는 산낙지 2마리가 꿈틀대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윤씨가 사망하고 2달 뒤 경찰과 유족은 A씨를 윤씨를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했고 검찰은 사건 발생 약 2년 후 A씨를 살인 혐의로 체포, 구속 기소했다. 수사당국은 최종적으로 A씨가 윤씨를 교묘하게 숨지게 한 것으로 확신했다.

A씨는 왜 윤씨를 죽여야 했을까. 그가 여자친구의 목숨과 맞바꾼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황상 A씨가 보험금을 노려 여자친구를 숨지게 한 것이 분명하지만 직접 증거가 없다는 점에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던 '낙지 질식사 사건'. 사건의 전말을 알아본다.

▲산낙지 2마리 들고 모텔 들어간 커플, 1시간 뒤 여자친구 '뇌사'
2009년 2월부터 사귄 윤씨와 A씨는 성격 차이로 자주 싸웠고 헤어졌다 만나는 것도 반복됐다.

2010년 4월18일 오후 커플은 영종도로 데이트를 떠났다. 이날은 A씨가 며칠 전 윤씨와 크게 싸운 뒤 "앞으로 잘할테니 다시 사귀자"고 해 가진 첫 데이트였다. 영종도를 다녀온 커플은 오후 11시20분쯤 인천 남구 주안동 한 모텔을 예약한 뒤 인근 술집을 찾아갔다.

A씨는 윤씨와 간단한 게임을 하면서 지는 사람이 술을 마시자고 제안했다. 게임에 약한 윤씨는 계속 졌고 어느새 술에 흠뻑 취했다. 그러자 A씨는 "모텔에 들어가 2차 술자리를 하자"며 윤씨의 손을 잡고 나섰다. A씨는 미리 알아둔 인근 횟집에 들여 산낙지 2마리를 통째로, 나머지 2마리를 잘라서 구입했다. 커플은 19일 오전 3시쯤 모텔에 들어갔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난 오전 4시20분쯤 모텔 카운터에서 전화 소리가 울려댔다. 수화기에선 "여자친구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A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윤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뇌사 상태에 빠진 뒤였다. 결국 윤씨는 같은해 5월5일 인천 길병원 중환자실에서 '무산소성 뇌병증 및 심인성 쇼크'로 생을 마감했다. 윤씨의 시신은 여느 시신처럼 장례가 치러지고 화장됐다.

▲여자친구의 생명과 맞바꾼 보험금 2억원
윤씨의 유족은 "혜원이가 산낙지를 먹다가 질식해 죽었다"는 A씨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기에 윤씨가 운이 없어 숨졌다고 여겼다. 그나마 A씨가 윤씨가 입원 중인 동안 "혜원이를 너무 사랑한다. 영혼 결혼을 하고 싶다"는 등 유족에게 깊은 믿음을 줬다는 점에 윤씨가 남자친구 하나는 잘 뒀다며 고마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유족은 집안에서 윤씨의 보험 가입서를 뒤늦게 발견하고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이 보험은 '상해사망 2억원, 질병사망 2억원, 암 진단비 2천만원 등'의 조건을 갖춘 월 납입 보험료가 13만원인 생명보험이었다.

유족이 더 놀란 것은 윤씨가 죽기 1주일 전 A씨가 보험 수익자를 윤씨의 법정 상속인에서 자신으로 변경한 것이었다.

유족은 A씨에게 이 사실을 따져 묻자 A씨는 그대로 연락을 끊었다. 유족은 A씨가 보험금 2억 원을 거머쥐기 위해 윤씨를 계획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봤다. 같은해 8월 A씨를 살인 혐의로 고소했다.

1년 간 수사를 펼친 경찰은 최종적으로 A씨가 살인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고 지난해 7월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도 이 사건이 쉽지 않았다. 검찰은 9개월에 걸쳐 수사를 했고 지난달 12일 A씨를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전에 재판부를 설득해 A씨를 구속시키는 성과도 거뒀다. 이는 경찰이 인내심을 갖고 정황 증거를 전방위적으로 수집하고 검찰이 증거들을 퍼즐 맞추기 식으로 잘 조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드러난 남자친구의 어두운 과거와 범행 동기
A씨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어쩌면 수사당국의 의심을 피했을 지도 모른다. A씨의 범죄 전력은 화려했다. 그는 2008년 10월 강도예비와 사기죄로 수원지원에서 징역 6월을, 2002년 7월에는 특가법상 절도, 강도상해, 특수강도 증 죄로 징역 3년6월을 서울고법에서 선고받았다.

A씨는 윤씨를 만나면서 또 다른 20대 여성 2명과 사귀고 있었다는 사실도 수사 결과 드러났다. 유족을 상대로 한 윤씨를 향한 A씨의 순정이 모두 연기였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더구나 A씨는 윤씨가 숨지기 전부터 여자 친구 2명으로부터 2천700여만 원을 대출받아 사용하는 등 감당하지 못하는 빚을 안고 있었다.

A씨는 윤씨의 외조모와 친모가 암이 있다는 것을 이용, 윤씨에게 "가족력이 있으니 암 보험을 들어주겠다"고 윤씨를 꾄 것도 이 때문으로 추측된다.

A씨는 앞서 '사망 시 거액의 보험금을 탈 수 있는 보험이 있는지', '법정 상속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는 지'를 보험 일을 하는 자신의 고모에게 물은 사실도 밝혀졌다.

그리고 며칠 뒤 고모에게 "사망보장이 센 보험을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또 보험금 수익자를 자신으로 교묘하게 바꾸기도 했다. 윤씨가 숨지자 그는 일주일 뒤인 2010년 5월13일 보험사에 '윤혜원씨가 산낙지를 먹던 중 낙지가 목에 걸려 숨을 쉬지 못해 사망했으니 2억 원의 사망보험금을 지급해 달라'는 내용의 보험금 청구서를 전송, 2달 뒤 보험금을 받아냈다.

▲끝나지 않은 사건, 예상할 수 없는 재판 결과
이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오는 15일 오전 10시10분 인천지법 410호 법정에서 첫 공판이 열린다. A씨는 여전히 혐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A씨는 지난해 12월 21일 대전에서 자신이 과거 소유했던 고급 승용차량을 현 주인 몰래 훔친 혐의로도 재판을 받는다. 이 혐의는 재판 과정에서 A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A씨가 윤씨를 살해한 도구가 '낙지'일 것이란 예상이 벗어나면서 '확인되지 않은 제2의 방식으로 살인을 했을 것'이란 검찰의 주장이 향후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과 경찰은 낙지에 대해 'A씨가 사고사로 위장하기 위한 도구'였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검찰과 A씨의 변호인 측 간 살인도구를 두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시신 없는 살인 사건'에 대해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놓을지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범준기자 parkbj2@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