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반장이라는 말에 안심하며 인숙은 문을 열었다. 어머니 나이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 여인이 문밖에 서 있었다. 인민반장은 인숙이가 나들문을 열어주자 아파트 안으로 들어와 집안을 염탐하듯 재빠르게 눈알을 굴리며 이쪽저쪽을 살폈다. 그러더니 아래층에서 쿵쿵거린다는 소리가 들린다고 신고가 들어왔는데 무슨 일 있었는가 하고 물었다.

 인숙은 돌려 댈 말이 없어 국을 끓이려고 4·15 선물로 받은 북어를 한 마리 방망이로 두들겼다고 대답했다. 인민반장은 인숙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평양에서 언제 왔느냐고 물었다.

 인숙은 인민반장이 자기 집안에 대해 무언가 수상쩍게 생각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점심때 왔다고 사실 그대로 대답해 주었다. 인민반장은 그때서야 평양에 나가 공부하고 있는 부장 동지 큰딸과 둘째 아들이 왔다고 옆집 사람들이 전해주던 말이 생각나 고개를 끄덕여댔다.

 『오늘밤 여덟 시에 인민반총화가 있으니까니 오마니 퇴근하시면 일러드려라. 꼭 나와야 된다고.』

 인숙은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민반장은 그 말을 전하러 온 듯 집안을 한번 더 살펴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인숙은 바깥까지 따라나가 공손히 인사를 하면서 인민반장이 저만치 물러가는 것을 보고는 안으로 들어와 인영이를 나무랐다.

 『너 앞으로 현관바닥 주먹질하지 말라. 아래층에 사는 사람들이 신고했다잖니? 우리집에 무슨 일 있는지 살펴보라고….』

 인영은 아무 말도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끓어오르는 가슴속의 울분을 참지 못해 거실 바닥을 몇 번 주먹질했는데 그것이 인민반장에게 신고되어 다시 자신에게로 꾸지람이 되어 되돌아오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평양에서는 자기 멋대로 활개를 쳐도 누구 한 사람 간섭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 은혜읍은 그렇지가 않는 것이다. 주먹으로 거실 바닥 몇 번 친 것까지도 신고가 되어 다시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며 사사건건 간섭받는다고 생각하니 답답해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아이 썅! 주먹질 몇 번 한 것까지도 신고하고…정말 답답해서 못 살겠구나 이거.』

 그는 고래고래 고함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을 가까스로 참으며 어머니 아버지가 기거하는 살림방으로 들어가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면서 조금 전 인화가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 강당으로 불려나가 고등반 선배들로부터 사상비판을 받다가 추방 대상자로 결정되어 안전원의 보호를 받으며 집에까지 왔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제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동생한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닌 듯했다. 그도 학교에 가면 필경 수백 명의 전교생들이 모인 강당이나 운동장에서 조국과 인민을 배신하고 남조선으로 달아난 배신자의 동생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비판을 받다가 인화처럼 학교에서 추방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