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는 더 이상 앉아 있지도 못하고 그만 옆으로 픽 쓰러졌다. 그렇지만 누구 한사람 다가와 그녀를 부축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만치 떨어져 그녀를 엄호하고 있던 안전원 두 사람이 다가가 인화의 등을 두들기며 정신을 차리게 한 뒤 『사상투쟁이 끝날 때까지 똑 바로 앉아 있어라』 하고 엄한 표정으로 주의를 주면서 주석단의 눈치를 살펴댔다.

 그때 주석단에 앉아 있던 김문달 중좌는 새별고등중학교 학교장과 구역 교육위원회 당 비서를 자기 곁으로 끌어당겼다. 세 사람은 잠시 이마를 맞대고 앉아 사상투쟁을 어떻게 매듭 지을 것인가 하고 협의했다. 수백 명의 어린 학생들과 교원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사상투쟁을 벌였으니까 학생들의 가슴에 무언가를 남겨줄 수 있는 결론을 내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평안북도 낙원군을 이끌어 나가는 지방자치단체의 당기관과 행정기관, 그리고 공안기관 사이에는 자기들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는 것이다. 세 사람은 상급기관에 사상투쟁의 결과를 보고해야 할 자기 부서의 입장과 의견을 좁히기 위해 계속 머리를 맞대고 협의했다.

 사상투쟁에 참여한 새별고등중학교 학생들과 교원들은 지역의 당기관과 교육행정기관, 그리고 자신들의 사상동태와 일상생활을 살피고 있는 공안기관(사회안전부)이 어떤 판결을 내려줄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재판소의 판결보다 더 무섭게 초법적인 강제권을 행사하는 사상투쟁의 판결이 한 학생의 앞날과 그 가족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사상과 정신무장상태를 옆 사람들에게 과시하듯 계속 선전 선동일꾼들의 목소리를 무의식적으로 따라 외치면서 주석단의 동태를 살폈다.

 그때 구역 교육위원회 당비서와 이마를 맞대고 있던 김문달 중좌가 기요과장을 불렀다. 기요과장은 허리를 굽힌 채 잠시 김문달 중좌의 지시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여대다 구역 교육위원회 당비서가 불러주는 말을 받아 적었다. 그리고는 연대 앞으로 나와 전체 학생들에게 그 내용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낙원군 사회안전부와 당위원회는 조국을 배신하고 남조선으로 달아난 새별고등중학교 제1회 졸업생 곽인구 동무와 새별고등중학교 4학년 1반 곽인화 동무네 가족이 수령님께서 친히 이름을 지어주신 우리 은혜읍에서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추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사상투쟁의 판결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자 골수충성분자들의 목소리는 여기저기서 더 거세게 터져 나왔다. 학생들은 또다시 선전선동일꾼들의 목소리를 따라 외치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강당 안은 금시 전투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떠나갈 듯 소란스러워졌다.

 『배신자의 가족을 하루 빨리 우리 은혜읍에서 추방합시다!』

 『다같이 힘 모아 조국을 배신하고 달아난 그 가족들을 우리 은혜읍에서 몰아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