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원들은 바깥에서 그들 자매의 상봉을 지켜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 인화는 안전원 아저씨들한테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한 뒤 할머니를 찾았다.

 『할머니, 인장(도장) 가지고 나와 봐.』

 『갑자기 인장은 왜?』

 인숙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인화는 어쩔 수 없이 인구오빠 때문에 학교에서 사상투쟁이 있었다는 것을 언니에게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큰오빠와 한 가족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상투쟁의 주인공이 되어 비판을 받다가 안전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집에까지 왔다는 사실을 언니에게 울먹거리면서 고백했다.

 인숙은 그때서야 오빠의 신변에 무슨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평양 작은아버지가 급히 집으로 내려가 아버지의 말에 절대 복종하면서 가족과 함께 행동하라는 당부의 말씀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머리 속이 수세미 속처럼 복잡해지는 느낌이었지만 그녀는 밖에 안전원이 서 있다는 걸 의식하며 정신을 차렸다.

 잠시 후 인숙은 밖으로 나가 인화를 뒤따라온 안전원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면서 아파트 현관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인장을 가지고 나와 안전원들이 내민 문건 위에다 날인했다.

 안전원들은 그녀가 인장을 찍어주자 집안의 동태를 살피듯 안방과 건넌방 쪽을 힐끔힐끔 살피며 집안의 동태를 살폈다. 그러다 건넌방에서 손씨가 나오자 『로친네 안녕히 계시라요』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인숙은 물도 한 잔 마시지 않고 그냥 돌아가겠다는 안전원들을 더 붙잡을 수가 없어 아파트 복도까지 따라나가 배웅하고 들어와 할머니 앞에 붙어 앉았다.

 『인구오빠한테 무슨 일 있지? 할머니, 우리도 알 수 있게 속 시원히 말 좀 해줘.』

 손씨는 인화가 학교에서 사상투쟁의 주인공이 되어 수백 명의 학생들 앞에서 비판을 받다가 쓰러져서 안전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집에까지 왔다는 사실이 청천벽력같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것이 현실이었고 가족 전체가 짊어져야 할 멍에의 한 일단이라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앞으로는 이보다도 더 험악한 꼴을 봐야 할 것 같은 예감도 들어 모처럼 집에 온 손자손녀와 막내 인화까지 불러 앉혀놓고 곽병기 대위한테 들은 전연지대 화물자동차 전복사건의 실체를 인구의 동생들이 알 수 있게 소상히 전해 주었다.

 인숙은 갑자기 뒤통수를 한 방 얻어맞은 심정이었다.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면서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졌다. 오빠는 대관절 어쩌자고 조국과 가족까지 버리고 남조선으로 넘어갔을까? 허공에라도 대놓고 답답한 심증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인영이와 막내 인화가 보고 있는 앞에서 흔들리는 내면의 감정을 그대로 내보일 수가 없어서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어머니가 사용하는 살림방으로 건너가 이불이라도 덮어쓰고 혼자 엉엉 울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