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룡 상좌는 자아비판대에 올라설 때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허둥거리는 몸짓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당원들을 바라보며 넋빠진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때였다. 당원들이 앉아 있는 총회장 저쪽에서 아버지 같이 생긴 아바이 한 사람이 달려나오더니 당황해서는 안 된다고 소리쳤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리며 화물자동차 전복사건의 확실한 내용을 알아낸 뒤 직속상관한테 보고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다 보고시기를 놓쳐버렸다는 점을 강조하며 전체 당원들 앞에서 용서를 구하라고 했다. 그리고 혁명열사릉에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누워 계시기는 하지만 자신은 지금껏 그 빽줄이나 토대를 믿고 당의 위계질서나 상관을 우습게 여기거나 모독한 일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당장 죽을지라도 자신의 사상적 순결성과 당성은 변하지 않을 것을 결의하는 자세로 당당하게 자아비판에 임하라고 했다.

 곽병룡 상좌는 그런 충고를 해주는 아바이가 어쩌면 혁명열사릉에 누워 계신 아버지의 환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렸다. 그때서야 눈앞의 사물이 바로 보이며 당 총회장에 모인 당원들의 얼굴이 바로 들어왔다. 그는 그들을 향해 우선 연단 옆으로 한 걸음 물러 나와 90도로 허리를 굽혀 공손히 절을 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연대 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당원 동지 여러분 안녕하십네까? 낙원군 안전부장으로 부임해 와서 20여 년이 넘도록 복무하다 어제 오전에야 무거운 짐을 벗고 도 안전국 간부부로 발령을 받은 곽병룡입네다. 저는 당 총회장에 나올 때까지 오늘 열린 이 당 총회가 제 자식놈의 조국배신행위를 제가 빨리 당에다 보고하지 않은 리유 때문에 소집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네다. 그렇지만 제 자식놈과 저의 보고지연으로 인해 도 안전국 산하 많은 당원들이 바쁜 업무를 뒤로 제쳐놓은 채 이렇게 모이게 한 점에 대해서는 먼저 머리 숙여 용서를 빌고 싶을 뿐입네다.

 부부장 동지의 경과보고를 통해 이제는 많은 당원 동지들이 제 아들놈이 조국을 배신하고 남조선으로 달아났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네다. 부부장 동지의 경과보고처럼 제가 아들놈의 조국배신행위를 처음 알게 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달포 전입네다. 기런데도 저는 도 안전국 산하 여러 직속상관동지들께 보고 한 번 할 수 없었습네다. 그러께(1983년) 미그기를 타고 남조선으로 넘어간 리웅평 대위나 신중철 대위가 남조선으로 넘어갔을 때는 정식보고서나 비통을 통해 전연지대 소식이 후방으로 전달되면서 당원 자제들의 사상교육을 점검하라는 당의 결정지시가 있었지만 제 아들놈의 경우는 이미 달포가 지났는데도 전연지대 부대장으로부터 제 아들놈이 조국을 배신하고 남조선으로 달아났다는 소식이나 보고서가 전달된 적이 한번도 없었습네다. 그건 아직도 수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