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룡 상좌는 이 모든 것이 중앙당의 짜여진 지시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사후처리 과정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당해 보니까 단상 아래서 자신이 타인을 비판할 때보다는 몇백 배로 고통스러웠고 당이 이런 규정을 만들어 놓고 당원들을 짐승처럼 처단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불만스러웠다. 그러나 평양을 떠나올 때 동생 곽병호 과장이 두 번 세 번 몸가짐에 조심을 하라는 말이 떠올라 치받는 배신감과 울분을 감추면서 터벅터벅 도 안전국 당 총회장을 걸어 나왔다.

 이 무렵, 낙원군 은혜읍 새별고등중학교 강당에는 전교 학생들이 학급별로 비좁게 모여 앉아 있었다. 뒤에 들어온 학생들은 자리도 없이 선 채로 주석단 정면 벽에 걸린 수령과 지도자 동지의 초상화를 바라보다 양쪽 벽에 걸린 당의 정치구호들을 마음속으로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간 다시 연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단에는 새별고등중학교 학교장과 구역 교육위원회 당 비서가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사회안전부에서 나온 안전원들 5명이 푸른 안전원제복을 입고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안전원들 앞에는 곽병룡 상좌의 막내딸 인화가 앉아 있었다. 인화는 아직도 자신이 왜 연단까지 불려 나와 죄수처럼 앉아 있는지 그 까닭을 모르고 있었다.

 그때 김문달 중좌가 강당으로 들어와 주석단 상석에 가서 앉았다. 구역 교육위원회 당비서는 그때서야 어흠, 어흠 하면서 연대 앞으로 나가 상부에서 급히 새별고등중학교 전교생을 대상으로 사상투쟁을 전개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이렇게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면서 엄숙한 자세로 사상투쟁에 임해 달라고 훈시했다.

 교육위원이 연대에서 내려가자 학교장이 걸어나와 새별고등중학교 1회 졸업생이 조국을 배신하고 남쪽으로 달아난 사건이 발생해 부끄럽기 그지없다면서 앞으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교원들은 학생들의 사상교양에 한층 더 힘써 달라고 부탁했다. 학교장은 자신과 전체 교원들이 학생들을 잘못 가르쳐 졸업생 중에서 조국을 배신하고 남쪽으로 달아난 사람이 생겼다면서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고 내려왔다.

 그때 김문달 중좌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낙원군 사회안전부 기요과장이 걸어나와 지난 봄에 발생한 전연지대 화물자동차 전복사건 개요를 발표했다. 그리고 그 사건의 주인공은 며칠 전까지 낙원군 사회안전부장으로 복무한 곽명룡 상좌의 맏아들이며, 현재 4학년에 재학중인 곽인화 큰오빠라고 전교생 앞에서 이름을 밝혔다.

 사회안전부에서 기밀문건을 취급하는 기요과장이 주석단에 서서 공식적으로 그 사실을 공개하자 학생들과 교원들은 모두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얼이 빠져 있었다. 그러다간 안전부장의 아들이 어떻게 조국과 부모형제를 배신하고 남조선으로 넘어갈 수 있느냐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려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