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총회장의 분위기는 갑자기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곽병룡 상좌의 손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 소리만 회의장을 향해 울려 나갔다. 당원들의 표정은 이상하게 변해 가는 총회장의 분위기에 압도당해 점점 굳어졌고, 당 총회의 진행을 맡고 있던 정치부 부부장의 표정은 곽병룡 상좌가 손을 깨물어 당에 헌신할 것을 결의하는 모습에 질려 윗사람들의 눈치만 살피며 안절부절못했다.

 『토론방향이 엉뚱한 데로 흐르고 있잖아? 빨리 내려와 피부터 닦으라고 해.』

 도 안전국장과 함께 주석단에 앉아 있던 정치부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한 마디 했다. 자기 자식의 조국배신행위를 지금껏 당에다 보고하지 않고 미루어 온 사유를 곽병룡 상좌를 불러들여 사전에 들어보지 않고 그의 자리를 노리는 김문달 중좌의 말만 믿고 덜렁 당 총회를 열어 일을 그르쳤다는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거창하게 떠벌려 놓은 당 총회를 중동무이로 끝나게 할 수 없었다. 정치부장은 대충대충 매듭을 지어 빨리 당 총회를 끝내라고 지침을 주었다. 그때서야 정치부 부부장은 연대 앞으로 나왔다.

 『누구, 토론할 동무 없소?』

 부부장이 독촉하는 눈길로 장내를 휘둘러보았다. 이때 좌석 중간쯤에서 손이 불쑥 올라왔다.

 『제가 토론하갔습네다.』

 총회장에 모인 당원들의 시선이 일시에 그쪽으로 쏠렸다. 낙원군과 군(郡) 경계선을 맞대고 있는 평안북도 삭주군 사회안전부장이었다.

 『나와서 토론하시오!』

 당 총회의 진행을 맞고 있는 정치부 부부

 장이 발언권을 주었다. 삭주군 사회안전부장이 연단에 올라섰다. 『동지들! 우리는 지금까지 곽병룡 동무의 자아비판을 들어 보았습네다. 자기 자신의 사상적 순결성과 당성을 여러 당원 동지들 앞에서 손을 깨물어 맹세하는 모습, 저 개인적으로는 곽병룡 동무의 심정을 충분히 리해 할 수 있고, 또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네다. 20년 이상 곽병룡 동무와 당 생활을 해온 저로서는 이번 일로 인해 곽병룡 동무의 사상적 순결성에 의심을 가져본 일은 없기 때문입네다. 뿐만 아니라 선친들이 일구어 놓은 사상적 토대 위에서 당 생활을 시작했다고 해서 곽병룡 동무가 토대나 가문의 빽줄을 믿고 껑충거린 적도 저는 보지 못했습네다.

 그러나 곽병룡 동무는 자기 자식의 앞날과 자기 집안의 개인적 리익(利益)을 위해 우리 당 조직의 리익을 망각했다고 생각하며, 이 일에 대해서는 여러 동지들의 따가운 질책과 준엄한 비판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네다.

 그 다음 조국을 버리고 남조선으로 달아난 배신자들의 사상적 불순성과 사생활에 관한 이야깁네다. 여러 당원 동지들도 중앙당에서 하달된 결정지시서나 비통을 통해 알고 계시갔지만 전연지대에서 복무하다 남조선으로 달아난 배신자 치고 저마다 사연이 없는 자가 없습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