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만약 큰아들 내외의 권고대로 거처를 평양으로 옮겨버리면 큰아들 내외와 손자손녀들은 평양 사는 자기 둘째아들과 딸네들의 생활권 밖으로 밀려나 영영 잊혀지는 사람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큰아들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신풍서군으로 함께 들어가면 평양 사는 둘째아들과 딸네들이 나이 먹은 어미 생각이 나서 곽병룡 상좌를 잊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속에 큰아들 내외가 산간 벽촌에서 고생스럽게 산다는 것이 잊혀지지 않으면 저희들을 낳아 키워준 어미 생각이 나서도 맏아들을 산간벽촌에서 구해내려고 백방으로 노력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둘째 아들이나 딸네들이 형제애나 혈육지정이 없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 없이 자랐고, 곽병룡 상좌를 반은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성장한 자식들이라 형제지간의 우애나 정은 어느 집 자식들보다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인생살이라는 것이 아침저녁 만나고 피부를 맞대며 가까이 살아야 정이라는 것이 생기는 법이지, 혈육지간이라 해도 생활권이 다르거나 멀리 떨어져 살면 그만 남남간이 되어버리는 것이 정이란 것이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이웃이 사촌이라는 말이 전해져 오는 것이다.

 손씨는 그런 혈육지간의 정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아들 내외와 손자손녀들이 평양 사는 피붙이들로부터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자신은 큰아들 내외 곁에 있어야 평양 사는 아들딸들은 어미 생각 날 때마다 곽병룡 상좌를 덩달아 생각하고 될 것이고, 또 곽병룡 상좌의 기억이 그들의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를 찾아다니며 계속 구원의 손길을 뻗칠 것이란 생각을 한 것이었다.

 결국 손씨는 큰아들 내외와 손자손녀들을 산간 벽촌에서 하루라도 빨리 구해내기 위해 평양 둘째아들 곁에서 편하게 노후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뿌리친 것이다. 그리고 큰아들 내외와 같이 신풍서군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곽병룡 상좌가 보면 고생을 사서하는 격이지만 권세를 누리며 평양에서 사는 아들딸들이 힘을 합쳐 고생스럽게 사는 제 큰형을 하루라도 빨리 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큰아들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 큰아들 내외와 손자손녀들을 신풍서군에서 빼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씨는 곽병룡 상좌의 거듭된 권고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저었다.

 『오마니 생각이 정히 그러하다면 저희들은 더는 평양 가서 사시라는 말씀은 드리지 않갔습네다….』

 곽병룡 상좌 내외는 처음에는 의아스러운 생각까지 들었지만 어머니의 깊은 속마음을 알아차리고는 그들이 먼저 마음을 고쳐먹으며 살림방으로 건너갔다. 손씨는 그때서야 마음을 놓은 듯 옷을 벗고 잠자리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