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종착역 이탈리아
4. 로마 - 대제국을 건설하다
   
 


실크로드의 서쪽 끝 로마에 도착했다.

2006년부터 중국과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중동 국가를 지나 올해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종착역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지난해 중동국가를 돌아볼 때부터 유난히 로마시대 유적지가 점차 많아짐을 느꼈지만 실제 그 중심에 와 보니 상상 이상이다. 봐야 할 곳도, 가보고 싶은 곳도 너무 많다.
 

   
▲ 고대 로마시대에 입법과 행정, 사법 기능을 담당하던 공회장의 모습. 지금은 일부 기둥들만 남아있지만 과거에는 백만 명이 넘는 로마시민들의 정치·경제·사회의 중심지였다. /로마(이탈리아)=남창섭기자 csnam@itimes.co.kr


로마는 도착부터 쉽지 않았다. 공항에서 짐을 찾는데 만 1시간 가까이 걸릴 정도다.

지난 여름 로마에는 한국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가이드가 없을 지경이다.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줄어들었던 외국 관광객이 2010년에는 아이슬란드 화산폭발등을 영향으로 좀처럼 늘어나지 않다가 올해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양 관광객이 유독 많았다.

현지 로마인들은 여름을 맞아 조용한 휴양지로 떠나고 로마의 고대 유적지에는 외국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이곳 한국 교민은 5~6천 명 정도. 로마와 밀라노에 몰려있고 대부분 성악과 디자인 등을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많다.

로마 중심가에 위치한 기차역인 중앙역 부근에 동양인들의 상권이 형성돼 있다.

이곳은 원래 인도사람들이 상권을 잡았지만 이후 들어온 중국인들이 인도상권을 대신해 이곳을 장악하고 있다.
 

   
▲ 바티칸에 위치한 성베드로 대성당 내부의 금빛 모자이크 벽화


뒤늦게 진출한 한국 사람들이 자리 잡기 힘든 이유다.

거리곳곳에는 중국어 간판과 마사지,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태리의 물가는 상상이상이다.

기름 값은 우리보다 조금 비싼 리터당 2천300원 정도 하지만 나머지 음식값, 물건 값 등 모두 우리의 두 배 이상이다.
 

   
▲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형상화한 미켈란젤로의'피에타'상


가이드도 부족해 여러 탕을 뛰어야 할 상황. 한국 사람들이 로마로 다 온 듯 한 착각이 든다.

이곳도 역시 경제가 좋지 않다.

하지만 유럽이라는 한 배에 탄 이상 혼자 좌초되지는 않는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서민들에게 고물가는 분명 무거운 짐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하루 이틀에 로마를 다 보기는 힘들다. 대표적인 유적지만 약 20여 곳이 넘는다.

캄피돌리오와 베네치아 광장, 로마의 공회장, 팔라티노 언덕, 황제들의 공회장, 콜로세움, 개선문, 천사의 성, 나보나 광장, 판테온,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보르게제 장원과 박물관·미술관, 성모 마리아 마조레 성당, 쇠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 라테라노의 성요한 대성당, 성바울 대성당, 카타콤베, 아피아 안티까 대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과 박물관·시스티나 성당 등이 대표적이다.
 

   
▲ 고대 신전과 기독교 성당이 교차하는'판테온'신전


로마의 공회장과 콜로세움, 바티칸은 로마의 상징물이며,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 광장은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관광 필수 코스다.

이곳들을 다 불러보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력과 함께 사전에 철저한 공부가 필수적이다.


로마의 역사

전설에 따르면 고대 로마는 기원전 753년 초대 왕 로몰로(Romolo)가 창건했다고 한다.

이후 외세의 침략으로 멸망할 때 까지 1천년이 넘는 찬란한 영화를 누렸다.
 

   
▲ 로마 미술품들이 전시돼 있는'캄피돌리오'전경


세계의 수도 로마는 기원후 2세기 말쯤에 벌써 인구가 백만 명을 돌파한 대도시로 성장했다.

로마의 플라비 가문이 통치하던 시대는 로마 제국의 가장 영화로운 시대로 콜로세움, 티토의 목욕탕, 도미찌아노 황궁, 나보나 광장(도미찌아노 경기장) 등이 건립됐다.

로마는 또한 세계 기독교의 산실이다.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최초로 기독교 대성당을 건립하도록 지시했다.

라테라노의 성 요한 대성당과 무엇보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대표적이다.

성바울 성당은 이보다 1세기 후에 건립됐다.

로마는 중세기에 들어서면서 교황들의 명에 따라 성당의 증개축 공사가 더 활발해졌다.

특히 1400년대 르네상스와 함께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이 곳곳에 들어섰다.

 

   
▲ 미켈란젤로의 유명한쇠사슬에 묶인'모세'상

당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대표적이다.

이어 1600년대는 르네상스식 엄격한 예술 풍조에서 벗어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바로크 시대가 막을 열었다.

대표적으로 나보나 광장과 바로크 건축을 대표하는 베르니니, 보로메오의 각종 분수와 성당, 광장 등에서 이들 작가의 무한한 창작성과 예술성을 찾아볼 수 있다.

1700년대는 로마에 도시미학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유적들이 많이 건립된다.

그 중 트레비 분수와 삼위일체 계단을 들 수 있다.

1900년 초반기에 세워진 주요 건물은 이탈리아 국회가 있는 몬테치토리오궁, 비토리아 엠마누엘레 2세 기념관, 레푸블리카 광장 등이다.

더불어 고대의 전통적인 동네와 르네상스 시대 동네들이 도시개발로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경제 성장 붐을 타고 지난 60년대까지 계획성 없는 도시개발로 많은 유적들이 사라졌다.

이후 3천년 가까운 로마의 옛 도시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는 엄격한 개발제한조치를 취하고 있다.

 

   
▲ 바티칸 광장


로마 속 또다른 나라 '바티칸'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건립한 고대 성 베드로 대성당이 수십 년간 방치되어 복구가 불가능하자 1506년 교황 줄리오 2세의 명으로 신축공사가 시작돼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됐다.

 

   
▲ '라오콘테'상의 모습. 기원후 1세기 그리스 작품

기존의 성당을 허물고 새 성당을 세우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이 공사는 건축가 브라만테가 맡았지만 1514년 그가 사망하면서 여러 건축가의 손을 거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광장으로 꼽히는 성베드로 광장은 그 웅장함에 우선 감탄하며 두 팔을 벌려 전 세계의 인류를 포옹하는 듯 한 인상을 준다.

건축가 베르니니의 천재적인 능력이 발휘된 광장은 그의 작품 중 최고 걸작으로 평가된다.

광장 중앙에는 이집트식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다.

대성당 정면 중앙에는 축복의 발코니가 있는데 이곳에서 신임 교황이 전 세계를 향해 축복을 내리는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성베드로 대성당 안에는 유명한 작품들이 즐비하다.

피에타 예배당에는 미켈란젤로가 20세가 채 되기도 전인 1499년 완성한 걸작 피에타 상을 볼수 있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가 성모 마리아의 팔에 안겨진 모습을 조각한 것으로 성모 마리아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감동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이 밖에 미켈란젤로의 시스타나 성당 천장 벽화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들은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다.



이탈리아=인천일보-인하대 실크로드 탐사취재팀

/남창섭기자 csnam@itimes.co.kr

/허우범 인하대 홍보팀장 appolo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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