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룡 상좌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는 자식의 신변을 책임지고 있는 직속상관이나 부대장이 국가비밀사항이니 입을 다물고 있어 달라 하면 자기 자신한테 불이익이 닥쳐온다 해도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 입을 다물고 있어야 되는 것이 자식을 둔 아버지의 마음이고 도리라고 생각했습네다. 제가 직속상관인 국장동지와 부국장 동지, 그리고 여러 부부장 동지들께 제 신상에 관한 일을 직보하지 않은 채 일시 당의 혁명대오에서 벗어나 있었던 점에 대해서는 처벌해 주십시오. 당의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아들이며 진정 뉘우치는 자세에서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갔습네다.

 그 다음 저의 사상적 순결성과 당성에 대해 비판하갔습네다. 이미 알고 계시는 동지들이 많갔지만 저의 부친과 삼촌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항일혁명투쟁을 하시다 젊은 나이에 목숨을 바치신 분들이고, 그 증거는 평양에 있는 혁명열사릉에 가보면 누구나 다 알 것입네다.

 저는 제 선친들이 조국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바쳤다는 그 사실 때문에 늘 몸가짐에 조심을 해 왔습네다. 선친들이 닦아놓은 사상적 토대와 빽줄을 믿고 건들거린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말입네다. 그러나 저 역시 수양이 부족한 사람이라 여러 당원동지들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앞으로 계속 노력해 고쳐 나갈 것이며, 당원 동지들의 따가운 질책도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달게 받아들일 것입네다.

 저는 앞으로도 투철한 당성과 위대하신 수령님께서 닦아놓은 주체사상으로 목숨이 끝나는 날까지 우리 당과 조국의 앞날을 위해 거름이 될 것을 맹세합네다. 동지들! 저의 사상적 순결성과 당성을 믿어 주십시오. 세상이 다 변한다 해도 이 곽병룡이 몸 속의 피 색깔이 변하지 않는 이상 조국과 수령과 당을 위하는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네다….』

 곽병룡 상좌는 잠시 말을 멈춘 채 당원들을 지켜보다 자신의 이빨로 중지를 꽉 깨물었다. 생살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나면서 그의 손가락 끝에서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말없이 곽병룡 상좌를 지켜보고 있던 부부장들이 이맛살을 찡그렸고, 당원들이 놀란 시선으로 자아비판대에 올라 서 있는 곽병룡 상좌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저의 손끝에서 흘러내리는 이 피를 보십시오. 여러 동지들이 보시다시피 이 피는 아직 붉고 진합네다. 제 자식이 본의 아니게 화물자동차를 엎어먹고 보위부 수사요원들의 공갈 협박에 못 이겨 조국을 배신하고 남조선으로 달아났지만 저는 앞으로도 이 피 색깔이 변치 않는 한 제 자식이 저질러 놓은 죄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마음으로 당의 어떠한 처벌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며 열 배 백 배 더 조국과 당을 위해 헌신할 것을 여러 당원 동지들 앞에서 맹세합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