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쪽에는 다들 별고 없더냐?』

 손씨는 절을 하고 다가앉는 큰아들을 바라보며 평양 사는 피붙이들의 안부부터 물었다. 곽병룡 상좌는 그가 만나보고 온 일가 친척들의 근황을 전하면서 동생 병호와 상의한 자신의 직장문제와 거주지 이전 문제를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그 말끝에 손씨의 거처 문제를 상의했다.

 『오마니, 저는 인차(곧) 신풍서군으로 거처를 옮겨야 하는데…어카면 좋갔습네까?』

 손씨는 큰아들이 함경도 고원지대로 거처를 옮겨야 된다는 말에 가슴이 아파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잠시 후 고개를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네?』

 곽병룡 상좌는 어머니한테 거처문제를 어떻게 말씀드려야 충격을 덜 받으실까 하고 고민하다 당에서 무슨 기별이 오면 자기 가족은 바로 살림가지를 챙겨 신풍서군으로 들어가야 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손씨의 거처문제가 걱정되어 이번에 평양 가는 길에 동생과 의논해 어머니를 평양으로 모시기로 했다면서 하루라도 빨리 둘째아들 집으로 거처를 옮겨 달라고 말했다. 손씨는 자기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왜 그런 결정부터 내렸느냐고 서운한 표정을 지으면서 큰아들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범아, 내가 금년에 일흔이다. 옛날 같으면 지게에다 지고 갖다 버려야 할 나이에 얼마나 더 살겠다고 또 아범 곁을 떠나 거처를 평양으로 옮긴단 말인가? 나는 이제 편하게 오래 사는 것도 귀찮다. 그저 아범 곁에서 사는 날까지 살다가 저승에 계신 네 아버지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물론 아범 생각으로는 내가 산 설고 물 설은 천리 타관으로 쫓겨가서 고생하는 것이 가슴 아파 동생들과 마주앉아 이 어미 거처문제를 놓고 의논한 것 같은데 다들 마음씀씀이야 고맙고 장한 내 아들딸들이라고 생각한다. 어미는 이제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아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둘째 아들도 자식이니까 굳이 거기 가서 못 있으란 법도 없을 것이다. 허나 이 어미 마음은 아침저녁 우리 귀여운 인화 쓰다듬으며 아범 곁에 있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평양에 있는 둘째는 내 자식이지만 맏아들은 옛날부터 반은 서방님이라는 말이 있다. 특히 나처럼 일찍 홀로 된 청상(靑孀)들한테는 그런 기색이 더 심하단다. 그러니 이 늙은 어미 산골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마음 아프더라도 평양 가서 둘째네 집에서 기거하라는 말은 하지 마라. 아범 생각에는 둘째도 자식인데 거기 가서 있으면 뭐 어떻겠나 싶겠지만 어미 마음은 아범이나 둘째가 다 같은 아들이 아니란다. 그것만 알고 있거라….』

 손씨는 큰아들 내외를 앉혀 놓고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였다. 큰아들 내외는 나이 많은 노모를 산간벽촌까지 데리고 가서 고생시키는 것이 마음에 걸려 평양으로 거처를 옮겨 편하게 생활하라고 그런 말을 했겠지만 손씨는 거처만은 정말 평양으로 옮기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