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규모 실내시장'그랜드 바자르'교역 중심흑해 - 지중해 잇는'보스포루스 해협'군사적 요충지
   
▲ 동서양의 경계인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고대로부터 동서양의 문물이 활발하게 교류됐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품고있는 이스탄불은 이로인해 동서문명의 가교도시로 우뚝서게 됐다. /이스탄불(터키)=남창섭기자 csnam@itimes.co.kr


<1부> 동서양 문명의 충돌 터키
2.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 - 영원한 동서양의 교차로


터키는 동서양을 잇는 아나톨리아 반도를 차지한 이슬람 국가다. 그런 까닭에 터키는 옛날부터 중국, 몽골, 앵글로 색슨, 슬라브와 라틴 등 많은 민족과 문명을 공존해왔다. 터키의 어느 곳을 가도 인류의 역사와 문명의 보고들이 널려 있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기준선인 보스포루스 해협을 품고 있는 이스탄불은 육상 실크로드의 끝이자 지중해 무역의 시작점이다. 중국 서안에서 출발한 비단이 이곳에서 로마로 건너갔고 유럽의 문물이 또한 이곳을 통해 중국으로 전달됐다. 이처럼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 고대의 제국들과 로마 제국, 기독교와 이슬람, 흑해와지중해 등을 연결하는 동서양의 가교이자 인류문명의 집합지였다. 그래서 시대가 바뀌어도 이스탄불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


지리적 요충지인 이스탄불은 기원전 7세기경, 메가라 출신의 그리스인 지도자 비자스가 델피 신탁의 계시를 받아 건설한 곳으로 처음에는 비잔티움이라고 불렀다.

비잔티움은 보스포루스해협을 지나는 선박들의 통과세로 부를 쌓았다. 서기 330년, 비잔티움을 차지한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개칭했다. 그리고 1천년을 수도로 번성했다.
 

   
▲ 4천개가 넘는 상점들로 빼곡한'그랜드 바자르'는 오늘도 세계인의 발길을 부여잡는 실크로드의 시장으로 건재하다.


서기 1453년, 오스만 터키가 이곳을 차지하자 이스탄불로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는데, 터키 전체 수입액의 70%가 이스탄불에서 처리된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이름은 다르게 불렸지만 그 중요성과 경제적 이득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을 차지한 국가는 세계 경제를 장악하는 경제력을 갖춘 대국이 되었다.

이스탄불 항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그랜드 바자르는 실크로드의 카라반들이 동서양의 문물을 모아 판매하던 곳으로 오늘도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15세기에 건축되어 증개축을 해온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실내 시장으로, 개미집 같은 미로에 4천개가 넘는 상점이 빼곡하다.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북적이는 시장에 들어서면 금은 세공품과 보석류, 카펫과 피혁제품, 각종 향신료와 도자기 등에 눈이 홀리고, 세계의 모든 언어로 손님을 부르는 소리에 귀가 어린다.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교역의 중심지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하여 오늘도 40만 명의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각종 공예품과 특산품을 찾는다.

이스탄불은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유럽 대륙 마지막 기차역이 있는 곳이다. 1883년 개통된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프랑스 파리를 출발해 로잔, 뮌헨, 비엔나, 베니스, 베오그라드, 소피아 등을 거쳐 이스탄불의 시르케지 역에서 멈춘다. 원래 시르케지 역은 톱카프 궁전의 일부였다. 그런데 궁전이 대화재로 폐허가 되자 역을 만든 것이다.
 

   
▲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마지막 종착역인'시르케지 역'의 모습. 지금은 한적한 기차역으로 변했다.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추리소설의 여왕인 영국의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당시 최고의 호화 열차답게 이용자들도 대부분 부유층과 고관대작들이었다. 이들이 숙박하는 장소인 페라 팔레스호텔 역시 최고 수준의 호텔인데, 터키 최초로 전기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이다. 이 호텔 411호실은 애거사 크리스티가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을 저술한 곳으로 지금도 그녀의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이전부터 당시 유럽인들에게 기차로 유럽을 횡단하는 경이로운 체험을 안겨주었다. 뿐만 아니라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여러 인종과 민족이 자리 잡은 유럽을 하나의 문명권으로 엮는 역할도 했다.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개통은 시르케지 역을 유럽의 관문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1977년, 시르케지 역은 항공편의 발달로 더 이상 예전의 영광을 구현하지 못한 채 과거의 명성만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인 보스포루스 해협은 옛날부터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중요한 바닷길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러한 까닭에 기원전 8세기부터 강자들의 관심의 대상이었기에 일찍이 이를 간파한 비자스가 이곳에 도시를 세운 것이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해협 양안으로 촘촘히 들어선 다양한 건물들은 이곳이 기독교와 이슬람교, 동양과 서양의 교차점임을 실감하게 해준다. 수시로 크루즈 유람선이 들락거리는 이스탄불은 오늘날도 여전히 동서양의 모든 인종이 모여드는 세계적인 도시다. 1973년, 이 해협을 횡단하는 현수교인 보스포루스교를 완성했는데, 이 대교를 통해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의 인류(人流)와 물류(物流)를 잇는 진정한 가교도시로 우뚝 섰다.

터키 사람들은 아침이면 유리창을 깨끗하게 닦는다. 알라의 축복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는 약 9천500㎞다. 옛날 카라반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하면 8개월 이상 걸리는 거리지만, 오늘날은 교통의 발달로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인천을 출발한 인류와 물류가 형제국인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아침마다 깨끗한 창문을 통해 축복받는 시대를 연다면 그 얼마나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신실크로드의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 인천의 사명이며, 이것이 경제수도와 동북아 중심도시를 지향하는 시작임을 탐사단은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온몸으로 절감한다.

터키=인천일보-인하대 실크로드탐사취재팀
/남창섭기자 csnam@itimes.co.kr
/허우범 인하대 홍보팀장 appolo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