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난투극 그후 … 경찰 단속 실효있나
   
▲ 지난해 11월 전국 신도시 아파트 분양 현장을 찾아다니며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폭력과 혐박을 일삼은 수도권과 전남, 강원 지역 조폭 50여 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처럼 조폭들은 돈벌이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을 과시하고 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조폭을 뿌리 뽑기 위해선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경찰의 단속이 시급한 상황이다. /연합뉴스


조폭과 경찰의 관계는 흔히 '악어와 악어새' 관계로 비유된다.

조폭은 경찰에게 범죄 정보와 특진의 기회를 주고 경찰은 조폭에게 단속 정보를 주고 유죄 협상(플리바게닝)을 제안한다. 이런 관계는 오래 지속돼 왔다.

인천 조폭 난투극이 파장을 일으키자 경찰은 '조폭 잡기'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선 경찰과 조폭 사이에서 잠깐 반짝하고 끝나는 일회성 단속일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경찰이 조폭과의 관계를 뜯어 고치지 않고 조폭에 대한 의식 구조를 바꾸지 않는 이상 제2의 조폭 난투극은 언제든지 일어날 것이다.

 

   
▲ 지난 21일 인천 남동구 길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벌어진 조직폭력배들의 난투극 장면이 잡힌 폐쇄회로 텔레비전 화면. 형사기동대 차량 옆 동그라미 안 지점에서 폭력조직원이 구타당하고 있다. /사진제공=인천경찰청


▲조폭 난투극 이후 조폭계 분위기

지난 28일 오후 부평역사 1층 정문 바로 옆에 사복을 입은 형사 3명이 주변을 살피고 있다.

부평서 강력팀 형사들이다.

또 다른 형사들도 건물 층층마다 배치돼 있다. 형사 30여 명과 전의경 40여 명이 이 행사에 투입됐다.

이날 부평서가 관리하는 S파 조직원의 어머니 칠순 장치가 부평역사 웨딩홀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형사들이 올 이유가 없겠지만 최근 인천 길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조폭 난투극이 발생하자 만약의 사태를 대비, 형사들이 투입된 것이다.

행사장에 전 S파 조직원, 현 조직원 등이 금방 눈에 띄었다.

이들의 가족과 지인들까지 합하면 100여 명 정도 돼 보였다.

행사장 입구에 후배 조폭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선배 조폭에게 '형님'하며 꾸벅 인사를 하는 조폭 도열 문화는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이 '형님' 인사만 해도 처벌하겠다고 한 것의 영향이다.

40대로 보이는 한 조직원은 "인천지역 조폭계 분위기가 확 죽었다"며 "경찰들이 뭐 하나 꼬투리 를 잡아 감옥에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눈에 띄었다 무슨 이득을 보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예정된 밴드 공연이 취소될 정도로 행사장 분위기는 썰렁했다.

행사 관계 조직원은 "아무리 분위기가 그렇다 해도 남의 행사 바로 앞까지 형사들이 배치돼 감시하니 너무한다"며 "경찰이 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선후배들이 발길을 다 돌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경찰 수뇌부는 조폭과 관련한 모든 행사에 전 형사들을 투입해 감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일선 경찰과 조폭 사이에선 올해 연말까지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지 않겠냐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악어와 악어새

경찰은 최소 올 연말까지 인천지역 조폭의 꼬투리를 잡아 불구속 입건 또는 구속 시킬 방침이다.

조폭 때문에 크게 상한 자존심을 조폭 검거로 만회해보겠다는 작정이다.

그러나 이미 낌새를 알아챈 조폭들은 모두 바닥에 몸을 바짝 엎드린 상태다.

일부 조폭들은 경찰에게 단속 정보를 직접 듣고 휴대전화를 꺼놓은 채 은둔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조폭 A 씨는 "친한 형사가 '경찰청이 인천경찰청에 올 연말까지 인천지역 조직폭력배 1개파당 조직원 10~15명씩 구속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귀띔해줬다"며 "당연히 나에게 몸을 피하라는 것인데 내가 만약 잡힐 경우 그 형사의 범죄 관련 '정보줄'이 끊기니 경찰 내부 정보를 주는 것 아니겠냐"라고 했다.

경찰이 조폭에게 오히려 '몸 조심하라'고 걱정하는 꼴인데 이는 그동안의 조폭과 경찰의 관계를 살펴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

경찰은 업무적으로 조폭에게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예를 들면 경찰이 날치기범을 잡아야 하는데 도무지 소재 파악이 안 될 경우 평소 친한 조폭의 도움을 받아 붙잡는 경우다.

조폭은 범죄에 대한 정보와 범죄자들을 많이 알기 때문에 경찰이 이들을 활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경찰은 또 조폭과 사전에 입을 맞춰 제법 큰 조폭 범죄를 적발, 특진의 기회로 삼기도 한다고 알려졌다.

조폭은 이를 소위 '경찰을 위해 한건을 터뜨려준다'고 한다.

경찰은 대신 평소 조폭에 대한 관리·감독을 느슨하게 해주는 식으로 돕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뛰는 경찰 나는 조폭

더 큰 문제는 경찰과 조폭 간 연령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것이다.

조폭은 점점 젊어지고 경찰은 점점 노쇠하고 있다.

조폭 난투극 이후 조폭을 수사하는 한 형사는 "우리가 조폭에 대해 그동안 너무 관심이 없었다"며 "10~20대로 구성된 일명 조폭 추종 세력들에 대해선 전혀 알 길이 없고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조차 파악이 안 된다"고 했다.

현재 경찰이 공식적으로 파악한 인천지역 조직 폭력단은 모두 13개파에 280여 명이다.

그러나 실제로 추종 세력들까지 합치면 500여 명 이상이다.

경찰은 조폭을 관리하는 형사 인원은 한정돼 있다 보니 조폭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게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매년 심사위원회를 열어 조폭 관리 대상자를 선정하고 해제하지만 단순하게 범죄 기록 등만 보고 선정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관리 대상자를 해제 시키는 것은 웬만하면 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이상 죄를 안 짓고 조용히 사는 전직 조폭이라도 관리 대상을 해제시켰다 나중에 큰일이 터지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조폭 B 씨는 "인천지역 조폭 단체는 사실 13개가 아니다. 원래는 5개뿐 인데 경찰이 실적을 위해 임의로 나눈 것"이라며 "경찰이 마음대로 조직을 나눠 관리하다 결국엔 관리 조차 못하는 우스운 꼴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박범준기자 parkbj2@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