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문명의 충돌 터키1. 아라비아와 중국으로 가는 사통팔달의 길목, 아나톨리아
   
▲ 자연이 만든 기묘한 기암괴석과 엄청난 지하도시가 있는 카파도키아 전경. 카파도키아는 히타이트 제국의 중심지였으며 기원전 19세기경부터 중계무역이 발달한 곳이다. /카파도키아(터키)=남창섭기자 csnam@itimes.co.kr


역사는 인류가 만든 국가들의 흥망성쇠에 대한 기록이다.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도 흥망성쇠의 원인은 한 국가의 경제력에 달려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사회 훨씬 이전부터 경제력의 유무는 곧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동서 문명의 소통이 이루어진 실크로드도 주된 교류는 상품 판매였다.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 로마의 유리와 보석 등이 중개지의 상품과 함께 동서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문명을 발전시키는데 일조했다. 실크로드는 항상 경제를 움직이는 길이고 좌표였다.

그러므로 도시들은 돈줄인 실크로드를 차지하기 위해, 아니면 새로운 실크로드의 길목이 되기 위해 고심했다.

 

   
 



시리아의 알레포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얼마 가지 않아 터키의 국경에 이른다. 국경을 지나면 터키의 첫 도시 안타키아에 이르는데, 우리에게는 안디옥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안타키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뒤 그의 수하였던 셀레우코스가 터키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셀레우코스 왕조를 건설하며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도시 이름으로 정한 곳이다. 안타키아는 로마 제국 시대에는 50만 명이 넘는 인구를 자랑하며 로마,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제국의 제 3의 도시로 번창했다. 옛날 알레포를 거친 실크로드 카라반들은 반드시 안타키아에 머물렀다. 시내를 흐르는 오론테스 강을 통해 20여 ㎞ 떨어진 지중해와의 무역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라비아로 가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중국으로 가는 실크로드의 길목이기도 했다. 이곳을 차지한 셀레우코스 왕조는 동서남북을 오가는 카라반들의 행렬만큼 부강했다.

그중에서도 안타키아의 번성은 극에 달했다. 도시의 번성은 소비와 향락을 동반한다. 안타키아의 밤은 음주가무와 음란한 연극의 향연으로 날 밝는 줄 몰랐다. 로마시대의 시인 유베날리스는 오론테스 강의 음탕함이 로마의 티베르 강으로 흘러들어온다고 풍자하기도 했다.

안타키아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여행을 한 곳이고 세계에서 가장 먼저 대주교청이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말인 '크리스천'이라는 말도 이곳에서 처음으로 불렸으며, 로마,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초기 그리스도교의 4대 교구로 인정받은 곳이다. 또한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에 경교(景敎)로 알려진 네스토리우스파의 동방선교 여행의 출발지도 이곳 안타키아다.

안타키아는 오론테스 강의 수심이 낮아져 항해가 불가능해지면서 도시의 기능을 상실한다. 16세기 오스만터키 제국시대에는 조그만 시골 마을로 전락했고, 1822년 지진 이후에는 고작 5천명만이 거주할 뿐이었다.
오늘의 안타키아도 소박하다. 잦은 지진은 전성기의 유적지를 황폐화시켰고, 실크로드의 영광은 보이지 않는다. 1938년 시리아로부터 빼앗은 도시라 국경을 넘나드는 인적도 드물다.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 오론테스 강만이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고 있는 듯하다.

안타키아에서 자동차로 4시간 정도 북쪽으로 달리면 기기묘묘한 기암괴석이 숲을 이뤄 마치 외계인의 땅에 온 듯한 카파도키아에 이른다. 이는 오래 전에 화산폭발로 인한 용암과 화산재가 만들어낸 장관이다. 카파도키아가 역사에 나타난 것은 히타이트 제국부터다. 히타이트 제국의 중심지였던 이 곳은 기원전 19세기경부터 무역중계지로 발전했다.

우치히사르 계곡에 서면 마치 벌집처럼 연결된 천혜의 요새가 펼쳐진다. 이러한 까닭으로 히타이트 제국시대부터 이곳을 성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괴레메의 기암절벽은 마치 동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데, 만화영화 '스머프'의 작가가 이곳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카파도키아는 기암괴석뿐 아니라 지하도시 데린쿠유로도 유명하다. 이는 로마 제국 시기, 그리스도 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의 계곡으로 피신하여 생활했기 때문이다.
 

   
▲ 버섯모양 바위가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파샤비아 계곡.


데린쿠유는 지하 8층, 총 40m 깊이의 지하도시다. 개미집처럼 지어진 데린쿠유는 지하터널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외부에서 발견을 해도 터널을 봉쇄하면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카파도키아에서 서북쪽으로 270여 ㎞를 달리면 터키의 수도 앙카라다. 앙카라는 터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중심이다. 아나톨리아는 '해가 뜨는 곳'이라는 뜻인데, 라틴어로 '오리엔트'라고 번역됐다.

앙카라가 터키의 수도가 된 것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대항한 국민적 영웅인 아타튀르크가 혁명에 성공하고 이곳에 공화국의 수도를 정한 1923년부터다. 하지만 앙카라의 역사는 카파도키아와 마찬가지로 히타이트 제국 시대로 올라간다.

기원전 8세기 프리기아인의 시대를 거쳐 기원전 6세기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시대에는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인 수사에서 아나톨리아의 행정중심지인 사르디스를 연결하는 '왕의 길'이 지나는 교역도시로 부상했다. 로마제국 시대에는 갈라티아라고 불렸는데, 사통팔달의 길목으로 그 중요성이 한층 더 부각됐다.

앙카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이다. 일명 히타이트 박물관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아타튀르크가 모든 히타이트 관련 유물을 앙카라에 모아서 박물관을 만들자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물관을 신축할 예산이 없어 오스만제국 시절 대상들의 숙소로 썼던 건물과 복개시장 건물을 보수 증축해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실크로드의 유적지가 박물관이 되어 인류 문화의 보고를 전시하고 있다니 참으로 기이하고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터키=인천일보-인하대 실크로드탐사취재팀
/남창섭기자 csnam@itimes.co.kr
/허우범 인하대 홍보팀장 appolo21@hanmail.net